[기자의 눈/민동용]민주당 ‘로텐더홀 전투’ 정말 이긴건가

  • 입력 2009년 1월 6일 03시 00분


“제가 ‘로텐더홀 전투’에서 안경을 깨 먹어 상이용사로 등재됐습니다.”

5일 오후 2시 국회의장실에 들어선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김형오 의장과 인사를 나눈 뒤 이런 농담을 했다. 3일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벌어진 민주당 의원, 당직자들과 국회 경위들 간의 몸싸움을 그렇게 비유한 것이다.

원 원내대표의 기분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모두(冒頭) 발언을 하라는 김 의장의 요청에 무뚝뚝하게 고개를 가로저은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민주당은 열흘간의 국회 본회의장 점거 농성에서 ‘승리’를 거뒀다. 한나라당이 느꼈을 열패감에 비하면 뿌듯함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국회법에 반하는 점거 농성으로 얻은 결과에 대해 국민도 지지한다고 오판하는 건 아닌지 냉정히 헤아려 볼 일이다.

국회에서 82석인 민주당이 172석의 한나라당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다. 정상적인 표 대결에선 민주당이 이기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85개 쟁점 법안을 의장 직권상정으로 강행 처리하겠다고 하니 분노가 치밀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른바 ‘MB악법 강행 처리 저지’를 외치며 감행한 본회의장 점거 농성은 민주적 행위가 아니다. 회의가 열려야 할 본회의장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국회의장의 입장마저 막은 것은 엄연한 국회법 위반이다.

민주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은 2007년 12월, 대통령선거를 며칠 앞두고 야당의 이명박 후보를 겨냥한 ‘BBK 특검법’을 “직권상정하라”며 본회의장 점거 농성을 벌여 뜻을 이뤘다. 대통합민주신당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결별했지만 사실상 여당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 민주당은 이번엔 85개 법안을 “직권상정하지 말라”며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점거 농성을 벌여 역시 뜻을 이뤘다. 여당에서 야당이 되면서 직권상정에 대한 정치적 태도가 바뀌었지만 물리력을 써서 원하는 바를 얻은 것은 똑같다.

한나라당이 상임위를 거치지 않은 법안을 무더기로 직권상정하려는 것은 정치적 논란이 될 수는 있지만 국회법상으로는 의장의 권한에 속한다. 반면 민주당이 본회의장 등을 점거하고 이를 무기삼아 원하는 바를 얻어낸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최근 국회는 악다구니와 분노, 증오로 가득했다. 이에 절망한 국민이 많다. 국민이 원하는 야당은 수적 열세를 불법적 행동으로 극복하려는 대신 설득력 있는 논리로 정당하게 협상하는 책임 있는 공당임을 민주당은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민동용 정치부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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