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장편만화 ‘식객’ 연재 마친 허영만 화백

  • 입력 2008년 12월 19일 03시 00분


“잘살아도 정작 뭘 먹어야 좋을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음식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뿌듯합니다.” 6년 3개월간의 동아일보 연재를 끝낸 만화 ‘식객’의 허영만 화백. 원대연 기자
“잘살아도 정작 뭘 먹어야 좋을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음식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뿌듯합니다.” 6년 3개월간의 동아일보 연재를 끝낸 만화 ‘식객’의 허영만 화백. 원대연 기자
“제철에 제대로 된 음식 관심 갖게 해 보람”

트럭 건어물상 보고 ‘성찬’캐릭터 구상… 사람얘기로 승부

음식소재 무궁무진… 기록한 것 50분의 1도 못 그렸어요

2002년 9월 2일자 동아일보에 처음 실린 만화 ‘식객’이 이달 18일자를 끝으로 6년 3개월간의 연재를 마쳤다. 1화 ‘어머니의 쌀’을 시작으로 116화 ‘학꽁치’까지…. 그동안 1438회 연재됐고 22권의 책으로 출간됐다. 같은 이름의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돼 흥행에도 성공했다.

허영만(61) 화백은 17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자곡동 작업실에서 “장편만화가 일간지에 처음으로 실렸다는 자부심을 후배 만화가들에게 물려줘 뿌듯하다”고 말했다.

―탄탄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식객은 재미와 정보가 함께 담긴 만화였습니다. 긴 연재를 끝낸 소회가 궁금합니다.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우리는 잘사는 것처럼 행세하죠. 하지만 여전히 세 끼 챙겨먹기 위해 허덕이며 살아요. 어떻게 해야 잘사는 건지 모르고, 으레 찾아오는 하루 세 번의 끼니때도 뭘 먹어야 할지 몰라 헤매고요. 식객을 통해 사람들이 제철에 나는, 제대로 된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듣자 하니 식객 팬인 일곱 살짜리 꼬마가 엄마에게 그랬대요. 왜 음식에 조미료를 넣느냐고. 그런 얘길 들으면 기분이 좋아요.”

―‘식객’을 처음 연재할 때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 3개월 동안 신문사에서 아무런 말이 없더라고요. 당시에는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독자들의 반응을 바로 본다는 게 어려웠으니…. 이렇게 반응이 없으면 연재를 끊어야지 생각했어요. 작심하고 문화부장을 만나러 갔는데 저를 신문사 이곳저곳 끌고 다니면서 식객 그리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시켜줍디다. 신문사라는 데가 이렇게 무뚝뚝해요.”(웃음)

―성찬이와 진수를 비롯해 이 만화는 어떻게 구상을 시작했나요.

“성찬이의 직업을 자취하는 파출소의 경찰관으로 할까, 트럭운전사로 할까 고민했어요. 그러던 중 트럭에서 건어물을 팔던 사람을 인터뷰한 신문기사를 보고 수소문 끝에 만났죠. 하루 종일 함께 다니며 성찬이의 캐릭터를 구상했어요. 나중에 점심 한번 하려고 했더니 연락이 끊겨버렸어요. 아마 그분은 ‘식객’을 보고 자기가 성찬이라는 걸 알 거예요. 진수는 여자 캐릭터가 필요해서 저절로 만들어졌고요.”

―식객을 연재하며 전국의 산해진미를 맛보셨을 테니 음식을 먹는 것도 까다로워졌을 것 같은데요.

“전남 여수 출신으로 육해공(陸海空) 음식을 다 맛보았죠. 그 덕에 맛에 대한 감각은 타고난 것 같아요. 어릴 적 밥상에 겨울에는 김, 여름에는 생선이 떨어진 적이 없었으니까요. 이런 경험에 ‘식객’까지 쓰게 되니 음식 하나를 먹더라도 조미료가 들어갔는지, 재료는 어떤지 따져보게 됩니다. 그래서 누가 나보러 ‘까탈남’이라며 집에서 마누라가 어떻게 견디나 모르겠대요. 집에서요? 주는 대로 아무 말 없이 먹습니다.”

―못 드시는 음식도 있나요.

“개고기요. 한번 먹으려고 숟가락을 들면 키우던 진돗개가 생각나요. 인천 앞바다의 선재도에 가서도 고둥을 깨서 만든 죽을 먹으려 해도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요. 그걸 그렸더니 어떤 독자는 어릴 적 생각이 난다며 고맙대요. 어릴 적 입맛이 이렇게 중요해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정어리 편을 쓰는데 어떤 게 정어리고, 어떤 게 큰 멸치인지에 대한 답을 못 찾겠더군요. 동네 어르신에게도 물어보고 수산대에도 물어봤더니 정답이 없어요. 연재는 시작했는데 그래도 만화는 어쨌든 결론을 내야 하잖아요. 수소문 끝에 ‘현산어보를 찾아서’의 저자(이태원)를 찾아 답을 얻어냈죠. 속이 다 후련하더라고요.”

―음식을 만화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그러니까 카메라가 필요하지요. 보통 한 음식을 그리기 시작하면 사진을 400∼500장씩 찍어둡니다. ‘식객’을 그리는 원칙은 간단해요. 독자들이 어떻게 하면 식욕을 느낄까,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충실했죠. 식객은 종이에 흑백으로 연재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텔레비전이든 종이신문이든 냄새를 표현 못하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전 그 대신 사람 얘기와 이야기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아직도 식객에서 다루지 못한 소재가 많이 남아 있나요.

“아는 후배가 형님 만화는 음식을 만드는 것만 하지 설거지하는 건 왜 안 나오느냐고 따지더군요. 그 친구는 수세미 회사 직원이었어요.(웃음) 12월이 제철인 꼬막도 아직 못 그렸죠. 김치를 놓고 한번 따져볼까요. 김치 종류만 130가지나 되는데 ‘김장’ 편에서 한 번 다뤘을 뿐이에요. 식객을 처음 시작하며 책으로 50권은 나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지금도 노트에 바닷고기 민물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등 재료별, 탕 국 면 등 음식별로 기록해 두는데 이것에 50분의 1도 그리지 못했더군요. 아직도 식객에 그릴 음식이 지천에 널렸어요.”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허영만 화백은

△1947년 전남 여수 출생 △1966년 여수고 졸업 △1966년 만화계 입문 △1974년 ‘집을 찾아서’로 한국일보 신인 만화공모전 당선 △2004년 오늘의 우리만화상 △2007년 제7회 고바우만화상 △만화 ‘각시탈’(1974년) ‘태양을 향해 달려라’(1977년) ‘오! 한강’(1986년) ‘날아라 슈퍼보드’(1990년) ‘아스팔트 사나이’(1992년) ‘비트’ ‘세일즈맨’ ‘미스터Q’(1994년) ‘오늘은 마요일’(1995년) ‘짜장면’ ‘사랑해’(1998년) ‘타짜’(2000년)


▲ 동아일보 원대연 기자


▲ 동아일보 원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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