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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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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미국에서 일어난 살인 유형을 분석한 결과, 알 수 없는 관계(unknown relation)에서의 살인은 1960년대 6%에서 1990년대에 39%로 증가되었다. 일본에서도 뚜렷한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의 생명을 빼앗는 자포자기식 살인 사건이 최근 10년 동안 67건이나 일어날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도 별다른 인연이나 원한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무감각한 살인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올해 4월 강원도의 산책로에서 30대 남성이 ‘세상이 싫어졌다’며 여고생을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7월에는 동해시청에서 민원인이 무차별로 흉기를 휘둘러 공무원이 사망하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고시원에서 일어난 묻지마 사건의 범인도 살인의 이유로 ‘세상이 싫어서’, ‘세상이 나를 무시해서’라고 했다. 이런 사건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면서 뚜렷한 동기나 원인 없이 관련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자행되기 때문에 경악스럽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무감각한 폭력을 양산하는 데 적합한 환경을 점차 갖추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경쟁 위주의 환경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억압과 좌절감은 내부에 잠재하는 폭력을 쉽게 행동화하게 한다. 어린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잠깐 뒤처지면 눈 깜짝할 사이에 낙오자가 되어 버리는, 불안을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다 보니 서로 간의 따뜻한 대화는 점차 줄어들고 그저 공식적인 업무적 관계만이 있게 된다. 직장은 물론이고 가정에서조차 사실(fact)에 근거한 대화만이 오가는 것이 현실이다. 부모 자녀 간에 “밥은 먹었냐?” “공부는 했니?” 하는 식의 대화, 부부간에도 “일은 잘했어요?” “월급은 언제 올라요?” 하는 식의 얘기만이 오간다. 내가 오늘 뭘 느꼈고, 어떤 감정과 기분이었으며, 나의 바람과 희망이 무엇인지와 같은 정서적인 대화는 찾아볼 수 없다. 일상의 어디에도 서로 간의 감정과 느낌을 주고받을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감정 어린 대화의 결여와 단절은 소외감, 좌절, 분노를 누적시킬 뿐이다. 이번 묻지마 사건의 범인은 평소 말이 많고 남의 일에 참견하기 유별나게 좋아하는 ‘종달새’였다고 한다. 주변에서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쉽게 실망하고, 심지어는 식탁 위 물병을 쳐다보며 정신없이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의 일상생활에서, 인간의 기본 욕구라 할 수 있는 집단에 소속되어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반복적으로 좌절되었을 것이다.
묻지마 범죄는 어쩌면 자신의 좌절과 상처를 결코 물어봐 주지 않고, 이야기를 건네주지 않는 단절된 사회의 한 면일 수 있다. 사회와 인간관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개인의 좌절과 억압이 잘못된 출구를 찾아 또 다른 사회적 약자들을 희생시키지 않도록 해야겠다.
바쁘다는 이유로 무시하면 한 사람의 누적된 소외감이 커질 수 있음을 기억하자. 딱딱한 사실을 소재로 하는 대화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감정이 담긴 대화를 하면 어떨까. 주변의 사람에게 진정 어린 궁금함으로 물어봐 주는 대화의 따뜻함이 우리 사회에 더욱 필요해지는 것 같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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