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훈]젊은 세대의 짐

  • 입력 2008년 10월 1일 02시 57분


“요즘 애들은 참 불쌍해.”

얼마 전 대폿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한 선배가 무심코 던진 말이 생각났다. 동아일보 기자직에 지원한 사람들을 면접한 소감을 말하면서 그는 “토익시험 만점을 받은 명문대 출신자가 ‘기업체 입사시험에서 연달아 고배를 마셨다’고 털어 놓더라”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잠자는 아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한숨지었다. ‘고3이라 때로는 코피까지 쏟으며 힘들어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사정이 나아질 것인가. 대학 마치고 군대 가고 하다 보면 직장을 구하기까지 10년 세월이 더 흘러야 할 텐데, 10년 뒤 세상은 또 어떻게 변할 것인지…. 10대 후반인 아들 또래들이 사회에 진출할 즈음 우리 사회는 극심한 성장 정체기를 맞게 될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안정된 직장을 얻기는 더욱 힘들게 되고, 직장은 있더라도 독립할 집을 마련하기는 더더욱 어려울지 모른다. 고생을 모르고 온실 속의 화초처럼 커 온 세대이기 때문에 고난과 시련이라도 닥치면….’ 이런저런 상념이 꼬리를 물어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타오르던 촛불이 꺼져갈 무렵인 두어 달 전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는 불길한 조짐을 예고한 글을 봤다. 이 글에서 필자는 삶의 규모를 줄이고 절약을 생활화해 춥고 지루하게 길지 모를 ‘한반도의 겨울’에 대비할 것을 심각하게 충고했다.

그가 예고한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다. 미국 의회가 구제금융안을 부결시킨 여파는 그 끝이 어디일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주식이 폭락하고 외환시장이 출렁일 때마다 10년 전 자라 보고 놀랐던 가슴이 다시 벌렁거린다는 사람들이 많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상황이 그때보다 훨씬 더 구조적이고 심각하다고 진단한다.

지금은 워낙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 경제 위기만 눈에 보인다. 그러나 18년 뒤면 우리 사회는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또 ‘북한 변수’라는 감당하기 힘든 과제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남아 있다. 아들 세대가 우리 사회를 짊어지는 역군으로 활동할 때 ‘한국호’에는 이런 위협적인 삼각파도가 한꺼번에 닥칠지도 모른다. 부모 세대에 대한 사회적 부양책임에다 통일비용까지 대느라 허리가 휘청거리는 게 이들의 숙명이 될 것인가.

그래서 미봉에 그친 최근의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보면 화가 난다. 무엇보다 새로 임명되는 젊은 공무원들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떠넘긴 대목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기득권을 인정해야 하는 논리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자식 세대가 겪을 ‘미래의 고통’을 분담한다는 인식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공공부문에서 1만 명의 인턴사원을 채용하기로 했다는 최근 정부의 결정은 잘한 일로 보인다.

‘귀신 씻나락(볍씨의 사투리) 까먹는 소리 한다.’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는 사람을 보고 꾸지람을 할 때 쓰는 말이다.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 ‘희망의 씨앗’을 까먹을 리가 없으니 먹어치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인 셈이다. 젊은 세대들이 져야 할 짐을 덜어주는 연금 개혁이나 나라의 경쟁력을 높이는 행정구역 개편과 같은 개혁다운 개혁을 정부가 미루거나 소홀하게 여기는 것은 씻나락을 까먹는 일이나 다름없다. 동아일보가 주목한 ‘IP세대’여, 힘내라! 경제 위기에 행여 이들이 기죽지 않도록 기성세대여, 힘을 보태자!

최영훈 사회부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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