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독재체제의 평화적 해체

  • 입력 2008년 9월 18일 02시 59분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70을 넘겼으니 이젠 흔한 칠순잔치를 고희(古稀)랄 것도 없다. 물론 자연인의 삶에도 사고사가 있고 요즈음 우리나라 젊은이 사이에는 자살이 사망원인의 첫째라는 끔찍한 얘기도 들린다.

북한 김정일의 건강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분분하다. 누구나 건강엔 이상이 있을 수 있고 더 확실한 것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평양이나 북한, 나아가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할 때 참으로 걱정이 되는 것은 김 아무개의 병세가 아니라 북한체제의 병세와 그 미래다.

사람의 수명은 70이 흔한 나이가 됐지만 정치체제, 특히 독재체제가 70년을 넘긴다는 것은 흔치 않은 우리 세기의 ‘고희’가 됐다. 나는 우리의 평균수명을 살고 있는 내 생애에 많은 제국의 몰락을 구경했다. 독일 제3제국의 몰락, 대일본제국의 몰락, 그리고 소비에트제국의 몰락까지. 천년제국을 꿈꾸던 나치 독일은 12년, 군국주의 일본은 77년, 그리고 붉은 제국 소련은 73년 만에 몰락해 버렸다.

제국이 몰락하는 모습은 제각각이다. 오대양에 유니언잭을 펄럭이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일컬어지던 대영제국은 양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위엄 있게 몰락했다.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윈스턴 처칠을 제국을 평화적으로 해체한 영웅이라 일컫고 있었다. 나는 이때 ‘데몽타주(demontage·해체)의 영웅’이란 말을 처음 들은 듯싶다.

김정일 병세보다 北미래 걱정

그로부터 반세기 후 유럽의 동쪽에선 도처에서 독재체제를 평화적으로 해체하는 영웅이 등장했다. 물론 그에 앞서 극동에서는 중국대륙의 사회주의 ‘지령경제’ 체제를 시장경제 체제로 슬기롭게 탈바꿈시킨 위대한 난쟁이, 반혁명의 영웅 덩샤오핑이 있었다. 동유럽에서는 전 지구를 몇 번이고 파괴하고도 남을 핵무기를 보유한 소비에트체제를 서방세계와 협조하며 평화적으로 와해시킨 고르바초프가 단연 영웅 반열의 선두에 섰고 바웬사, 야루젤스키, 카다르, 헤벨이 뒤를 따랐다.

동유럽의 민주화, 붉은 독재체제의 해체가 어떻게 보면 너무나 평화적으로, 너무나 성공적으로, 그야말로 ‘비로드 혁명’이라 일컬을 정도로 매끈하게 이뤄진 모습을 봤기 때문에 우리는 수십 년 굳어진 독재체제와 기득권체제를 ‘데몽타주’하는 주역의 엄청난 어려움을 간과하기 쉽다. 그들을 굳이 해체의 ‘영웅’이라 칭송할 것까지 있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참으로 온 세계에 끔찍한 재앙을 불러일으키며 고약하게 멸망한 나치 독일이나 군국주의 일본의 경우를 상기해 본다면 세계와 인류가 저들 해체의 영웅에게 얼마나 큰 고마움을 빚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눈을 한반도로 돌려본다. 한국의 현대사에도 해체의 영웅은 필요했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필요하다. 건국 60년을 맞는 대한민국의 대통령 가운데서 나는 특히 세 대통령을 평가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의 공로를,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의 공로를,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화와 민주화의 공로를 각각 높이 평가한다. 이승만 박정희가 건설의 영웅이었다면 김영삼은 혁파의, 해체의 영웅이었다. 전임자 노태우의 업적은 무엇인가를 ‘했다’보다도 ‘안 했다’는 데 있다고 나는 적은 일이 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지지자에겐 기관차가 되지 않았고 반대자에겐 압제자가 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北체제 해체할 ‘영웅’ 나올까

그에 비해 김영삼의 가장 큰 업적은 파괴하고 혁파한 데 있었다. 그는 3당 합당이란 연정 참여의 우회로를 돌아 32년 굳힌 군부정권을 혁파했고 집권하자 막강한 군벌조직 하나회를 해산했고(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쾌거다) 경복궁을 겁탈한 일제 총독부 건물을 폭파해 버렸다. 그는 말의 알찬 의미에서 ‘해체의 영웅’이었다!

오늘날 한반도의 미래를 좌우할 북한체제의 문제는 단순히 김정일의 병세가 어떻고 그 후계자가 누구냐 하는 따위는 아니다. 메이지 유신으로 출발한 일본 군국주의제국이나 스탈린 독재로 다져 놓은 소비에트제국의 명운도 70년이면 막장이었다. 평양의 일본 덴노(天皇·천황)제 김씨 세습 왕조가 얼마를 더 갈지, 북한에도 과연 ‘해체의 영웅’이 나올 수 있을지, 한국과 세계는 그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