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심규선]예보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 입력 2008년 7월 30일 21시 00분


‘하늘을 친구처럼, 국민을 하늘처럼.’

기상청의 캐치프레이즈다. 그러나 요즘은 하늘도 국민도 기상청과 별로 친하지 않은 듯하다. 우리나라 날씨를 예보하는데 외국 전문가를 불러들이겠다니 기상청으로서는 수모다.

기상청은 원래 칭찬듣기보다 얻어맞기 쉬운 곳이다. 날씨와 무관한 사람이 없는 데다, 매일 성적표를 받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주말예보에 민감하다. 여가활동이 늘어서다. 그런 마당에 5주 연속 주말예보가 틀렸으니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 뿔난 것도 당연하다.

수치예보모델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지만 기상청만 닦아세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예보 프로세스의 상당 부분은 과학의 영역이고, 그 문을 여는 데는 예산과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만을 몰아붙여서 오는 변화는 오래가지 못하고, 성과도 유지할 수 없다.

기상청이 지난해 외부전문기관에 용역을 주고 물어봤다. 예보역량을 결정짓는 요소는 무엇이며 비중은 어떠한가. 기상청이 제일 잘 알 듯한 문제를 다른 기관에 물어본 게 조금 그렇긴 하다. ‘객관성’이 필요했나 보다. 아무튼 결과는 수치예보모델 40%, 관측자료 32%, 예보관 역량 28%였다. 우선 수치예보모델이 좋아야 하고, 관측자료가 많아야 하며, 예보관의 실력이 좋아야 예보적중률이 올라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세 가지 모두 문제가 있다.

수치예보모델은 기상관측자료를 집어넣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예측하는 분석틀이다. 우리는 10여 년 전 일본과 미국에서 수입한 수치예보모델을 쓰고 있다. 옛날 틀이다 보니 최근의 첨단 관측자료와 우리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해 신통치가 않은 모양이다.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그제 국무회의에서 영국의 수치예보모델을 들여오겠다는 뜻을 밝혔다. 영국의 예보능력은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에 이어 세계 2위다.

수치예보모델에 넣는 기상관측자료도 부족하다. 육상의 관측자료는 선진국 수준이지만 해상과 고층, 위성자료는 모자란다. 정부가 독자적인 기상위성과 해양기상관측선을 확보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게만 되면 돌발적인 악기상이나 집중호우, 태풍예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지역의 기상정보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다.

마지막이 유능한 예보관 양성이다. 예보모델과 장비가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결과를 해석하고 실수를 잡아내는 건 사람이다. 예보모델과 관측자료는 투자한 만큼 거둘 수 있다. 즉, 돈만 있으면 예보모델과 관측자료는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예보관은 그렇지 않다. 결국 예보의 질을 결정짓는 것은 예보관의 몫이라는 얘기다.

이 대목에서 기상청은 반성해야 한다. 기상청은 잦은 보직변경과 교육시간 부족, 과중한 업무 등으로 예보관이 예보능력을 축적해 나갈 환경이 안 돼 있다고 말한다. 옳지 못한 변명이다. 누구도 기상청에 그렇게 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

기상청의 존재이유가 뭔가. 정확한 예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능한 예보관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런 방법을 찾아내서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게 기관장이 할 일이고, 그게 리더십이다.

장인정신의 예보관을 기를 때

기상청은 뭔가 잘못되면 남의 탓을 하는 버릇이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예산이 부족해서, 장비가 안 좋아서, 사람이 모자라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로니컬하게도 기상청이 국민들로부터 뭇매를 맞으면 맞을수록 더 쉽게 예산을 확보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어느 전문가는 우리나라 예보능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쉽게 얘기하면 축구와 비슷하다. 컴퓨터 장비는 이미 선진국 수준이 됐는데 예보하거나 해석하는 역량이 부족하다. 개인기나 골 결정력이 없는 것과 같다.”

예보도 국력이다. 국력에 걸맞게 투자를 해야 한다. 그러나 실력 있는 예보관은 자판기의 상품처럼 누른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어떤 식으로 기를지는 전적으로 기상청 직원들의 의지와 합의에 달려 있다. 더 수모를 당하지 않으려면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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