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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24일 20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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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고유가 대책’이 주제였다. 당시는 2차 오일 쇼크 직후로 시의성 있는 주제였던 셈. 학생들의 해법은 다양했다.
A 학생. “가로등을 하나 건너 하나씩 끄면 어떨까요.” 교수. “좋은 생각인데, 방범이나 치안에 문제는 없을까. 지금까지 모든 등을 켜왔을 때는 틀림없이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갑론을박이 오갔고 이 아이디어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결론 났다.
B 학생. “고속도로에서 경제속도를 지키도록 의무화하면 석유를 아낄 수 있습니다.” 다른 학생의 반박. “다급한 사정이 있는 경우는 어떻게 하죠? 권유라면 몰라도 강제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물론 안전문제가 있는 과속은 단속해야겠지만….”
이 밖에도 갖가지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전반적인 동의를 얻은 것은 거의 없었다.
요즘 정부는 공공기관에서 승용차 홀짝제를 운용하고 있다. 짝수날에 홀수번호판 승용차로 출근하면 안 된다.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가 넘으면 정부는 이를 민간부문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한 공무원의 항변. “경기 안산에서 수원까지 통근한다. 승용차로 20분이다. 버스로는 세 번 갈아타고 1시간 반쯤 걸린다.”
공무원의 부인이 홀짝제에 묶인 승용차로 정부과천청사 근처에 남편을 내려준 후 돌아가는 장면도 목격된다. 얼마나 불편했으면 공무원 신분으로 그런 편법을 택했을까. 공무원이야 상징성이 크니 ‘절약분위기를 잡기 위해’라고 치자. 승용차의 사용가치를 크게 훼손하는 이런 일을 민간에 강제하는 게 온당할까. 또 가능할까.
가로등 격등제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 또 유가가 150달러를 넘으면 유흥음식점의 야간영업시간 단축, 대중목욕탕 격주 휴무 등도 도입된다. 오는 손님을 정말 내쫓아야 한다면 해당 업주는 얼마나 황당할까. 이게 ‘MB식 실용주의’는 아닐 게다.
“민간 홀짝제를 시작한다면 언제쯤 끝낼 수 있을까요? 유가가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은 무망(無望)하고…‘종료’ 발표가 쉽지 않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될 겁니다. 지속 불가능한데 퇴로는 없는 정책은 애초부터 꺼내지 말아야 합니다.”(한 전직 장관)
“후진국형 대책입니다. 가격의 신호기능을 활용해 수요를 억제해야 합니다.”(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장)
가격의 신호기능이 뭘까. 값을 올려 소비를 줄이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게 시장경제를 통해 11위 교역대국으로 커 온 나라에 어울리는 시장친화적 대책이다. 섣불리 유류세를 내리지 말아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 가지 전제는 있다. 생필품 가격에 민감한 취약 계층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 별도의 안전망을 쳐야 한다는 것이다.
석유 등 주요 원자재의 가격 상승으로 고물가와 경제침체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 이 같은 접근은 특히 중요하다. 원가로 인한 가격인상분은 각 소비주체(가계, 기업)가 묵묵히 감내해야 한다. 고통분담이다. 이를 다른 부문에 전가하면 기대인플레이션의 방아쇠를 당기게 된다.
허승호 경제부장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