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창혁]또 대장놀이?

  • 입력 2008년 7월 18일 02시 53분


지난해 초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현 민주당 최고위원) 씨가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인사와 비밀리에 접촉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비밀접촉을 주선한 대북(對北) 사업가 권오홍 씨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목적은 우리끼리 ‘대장놀이’라고 부른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것이었다”고 털어놨다. 국민들은 혀를 찼다. 측근이라고는 하지만 당시 아무런 직책도 없던 안 씨에게 대북접촉을 지시한 노 대통령이나, 정상회담을 대장놀이라고 불렀다는 그들이나 하나같이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하는 천둥벌거숭이 같았다.

▷노 전 대통령이 그제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냈다는 공개서한을 읽다 보면 그때 그 대장놀이가 생각난다.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 사저(私邸)로 가져간 재임 시절 기록물 사본을 돌려주겠다면서 “이미 퇴직한 비서관, 행정관 7, 8명을 고발하겠다고 하는 마당이니 내가 어떻게 더 버티겠느냐”고 했다. 법을 따르겠다는 게 아니라 ‘부하’들을 생각해서 내주겠다는 것이다. 그는 “전직 대통령을 잘 모시겠다는 게 겨우 이거냐”고 현직 대통령을 힐난한 뒤 “두려운 마음으로 이 싸움에서 물러선다”고 했다. ‘싸움’이라는 인식이 놀랍다.

▷노 전 대통령은 편지에서 “법리(法理)를 가지고 다투어 볼 여지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재임 시절에도 그는 법리 다툼을 즐겼다. 선거중립의무 위반을 지적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경고를 자기 식 법리로 무시하다 헌정 사상 초유의 국회 탄핵소추까지 당했다. 지난해 4월 제정된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은 전직 대통령이 재임 시 생산된 기록물을 열람하려 할 때 우선적으로 편의를 제공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열람 편의를 제공토록 했지, 열람하기 불편하면 그냥 가져가도 좋다고 한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법은 ‘내 편할 대로’ 해석하는 게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신의까지 들먹이며 편지를 보내자 이명박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 기록물만 회수하고, 불법 무단 유출 행위는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진짜로 전직에 대한 예우인지, 아니면 ‘귀찮아서 피하기’인지 모르지만 그 틈에서 또 한 번 망가지는 것은 법의 권위다. 법치(法治)의 선봉이어야 할 권력부터 법을 ‘예우’하지 않는 나라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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