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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2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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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일 당국이 발표한 ‘성장률 3.9%, 물가 5.2%’라는 하반기 경제전망은 스태그플레이션이 시작됐음을 분명히 일러주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은행(FRB)은 물가가 목표상한을 초과하고,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력보다 낮을 때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본다. 우리 경제는 물가목표(3±0.5%)와 잠재성장률(4.5∼5%)을 나쁜 방향으로 벗어나고 있다.
교과서를 뒤져 보면 상황은 더욱 분명하다.
“기상이변이나 전쟁 등으로 주요 원자재 가격이 올라 기업의 생산비용이 증가할 때 공급충격이 온다. 이 때문에 총공급곡선이 이동해 산출량이 감소하고(경기침체) 물가는 오르는 현상을 스태그플레이션이라 부른다. 최근 경험한 가장 파괴적인 공급충격은 1974, 1980년의 1, 2차 오일쇼크였다.”(‘거시경제학’·그레고리 맨큐) 종종 성장과 물가에 문제가 생기면 원인과 무관하게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이라는 뉴스 제목이 등장하곤 했지만, 사실은 지금 같은 때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표현을 써야 옳다.
당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1차 오일쇼크 때 미 FRB는 돈을 찍고 재정을 풀어(총수요곡선을 이동시켜) 경기를 유지했다. 하지만 대가가 컸다. 돈을 풀면 당초의 생산비 상승분보다 물가가 더 오르면서 강한 인플레이션 기대가 형성된다. 원가 상승 요인이 없는 제품의 가격이 덩달아 오르고(요즘 한국에서도 관찰되는 현상이다), 물가상승이 임금인상으로 이어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당시 미국에서는 1970년대 말까지 6∼11%대의 실업률 및 물가상승률이 지속됐다.
1979년 취임한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이 악순환을 깼다. 그의 전략은 ‘아무것도 안 한다’였다. 온갖 압력에도 돈줄을 풀지 않아 기대인플레를 철저히 차단한 것. 고통이 따르고 시간은 걸렸지만 사람들의 기대인플레, 임금, 가격 등이 달라진 여건에 맞춰 재조정되기 때문에 침체가 스스로 해소됐다. 예컨대 불경기로 실업이 증가하면 실질임금이 낮아지고, 인건비가 떨어지면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량은 다시 증가한다. 유가가 오른 대신 다른 제품 가격이 떨어져 물가도 원래 수준으로 회복된다. 2차 오일쇼크로 1980년 13.5% 오른 미국의 물가는 1982년부터 급격히 안정돼 이듬해 3%대를 회복했다. 물론 대가가 있었다. 1982, 83년 2년간 9%대의 실업을 감수했던 것. 하지만 이를 통해 미국은 인플레 없는 고성장이 계속되는 이른바 ‘신경제’의 기초를 마련한다.
이제 경제학자들은 “일시적 고통을 피하려고 돈을 풀어 스태그플레이션을 고착시키지 말라”고 권고한다. 그렇다고 정부가 정말 손놓고 있으면 안 된다. △안정화 정책을 펴되 △고통 분담을 설득하고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은 챙겨야 한다.
2008년의 유가 상승은 일회성이 아니라 꽤 지속될 것 같다. 실물뿐 아니라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금융 요인이 겹쳤다는 점에서 오일쇼크 때보다 변수도 복잡하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의 근본 원리는 다르지 않다. 국민들에게 솔직히, 당당히 말씀하시라.
“스태그플레이션의 시작입니다. 정부는 고통을 나누는 정공법을 쓰려 합니다. 동참해 주십시오”라고.
허승호 경제부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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