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종섭]이제 제자리로 돌아갈 때

  • 입력 2008년 6월 23일 02시 57분


현 정부가 출범한 지 100여 일 만에 국정운영의 위기를 맞이해 대통령의 비서진을 대부분 교체하는 홍역을 치렀다. 내각도 대폭 교체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 달 넘게 전개된 시민들의 촛불집회에서 요구한 것들에 대응한 정부의 조치다. 이번 사태는 2007년 대선과 올해 4월 총선에서 패배한 세력과 현 정부에 대한 반대세력이 주도해 시작된 것이지만, 현 정부가 미국과의 쇠고기협상에서 범한 중대한 실책으로 인해 일반 시민까지 가세해 협상의 잘못과 국가운영상의 난맥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으로 확대됐다.

정당한 정책까지 흔들면 안돼

결과만 놓고 보면, 정부는 쇠고기협상에서 중대한 잘못을 범한 뒤 재협상을 하라는 시민의 요구에 따라 결국 사실상의 재협상을 통해 문제를 상당한 정도에서 해결했다. 그리고 이런 오류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지고 국정을 쇄신하고 새 모습으로 다시 시작하게 됐다. 결국 시민들의 목소리가 대부분 옳았다. 초기부터 시민들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듣고 효과적으로 대응했더라면 시민들이 지루한 집회를 계속하지 않았을 것이고, 정부도 사태를 빨리 마무리하고 새 정부의 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그런데 집회가 계속되면서 시위는 쇠고기문제뿐 아니라 공공부문의 개혁에 반대하는 이익집단들과 각종 이해관계집단들의 목소리도 합류하면서 정부의 올바른 정책까지 무산시키려는 단계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사회의 부분이익들이 집단의 힘을 빌려 국가의 공적기능까지 마비시키고 직접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대의정치를 무력화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대의정치의 위기라는 진단도 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처럼 국민대표기관인 대통령과 국회가 국민의 건강과 관련해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지 못하고 식생활에서의 위험과 비대칭협상에 의한 중대한 국가피해를 방치하는 경우에는 그 자체가 대의정치의 위기이지,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나선 것이 대의정치의 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대의정치에서도 대의기관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주권자인 국민이 나서서 최후의 방어선을 칠 수밖에 없다. 이는 국민의 정당한 권리이고 합당한 정치적 의사표현이다.

오히려 대의정치의 위기는 쇠고기협상 문제를 국회로 끌어들이지 않고 20여 일 동안 원 구성도 않은 채 방치하는 국회와 정부의 늑장 대응에서 발생한다. 아직 쇠고기협상이 효력을 발휘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가축전염병예방법의 개정을 통해 쇠고기수입에 따른 안전장치를 마련하자고 하는 야당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이를 등원조건으로 내거는 것은 얄팍한 전술이지만 아예 논의조차 하지 않으려는 태도도 잘못됐다. 빨리 원 구성을 해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면서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기준을 법률로 마련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보면서 우리의 입장을 정해가는 것이 국가이익상 타당하다.

정부도 충실한 후속대책 내놔야

이명박 정부를 반대하는 세력들은 이 국면을 정치투쟁으로 전환해 정부퇴진운동으로 가져가고 싶겠지만, 이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촛불집회의 진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의 추가협상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좀 더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효과적 대책을 찾는 것이 국가이익에 더 부합한다.

국회는 혼란스러운 논의들을 정돈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고, 정부도 무턱대고 국제질서만을 내세울 게 아니라 국민에게 모든 문제를 자세히 설명하고 충실한 후속조치를 취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전문가들도 이번 사태에서 제기된 쟁점들을 차분히 정돈해 국민에게 보여주고 이 상황에서 우리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확보하는 방책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종섭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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