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토머스 프리드먼]이집트 식량난 남의 일 아니다

  • 입력 2008년 6월 20일 03시 01분


미국인들은 세계적인 에너지 식량 위기를 가계 경제 차원의 문제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이집트에 와서 보면 상황이 전혀 다르다.

많은 사람이 궁핍하게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식량과 연료 가격 상승이 얼마나 정권을 불안하게 할 수 있는지 볼 수 있다. 이는 개발도상국들의 정치현실에 민족주의나 공산주의만큼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몇 년 전 경제 개혁에 착수한 결과 최근 3년 동안 이집트는 평균 연 7%의 경제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최근 식량과 연료 가격의 상승은 경제 성장 효과를 모두 잠식해 버렸다.

서민들이 모여 사는 카이로 슈브라 거리에 있는 후세인 엘 아시리 씨의 닭고기 가게에서 식량과 연료 가격 상승을 체감할 수 있었다. 몇 년 동안 이 가게는 꾸준히 매출이 늘었지만 최근 6개월 동안 닭고기 가격은 2배로 올랐다. 아시리 씨는 “전기, 연료, 인건비 등 모든 가격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이집트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빈곤층에 식비는 가계 예산의 60%를 차지한다. 국제 밀 가격이 두 배로 오르면 미국에서 수입한 밀로 빵을 만들어 먹는 이집트인들은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된다. 식량 때문에 폭동이 빚어지는 것은 이제 카이로의 일상이 됐다.

이 가게 옆에서 감자를 파는 상인은 상황이 훨씬 더 위태롭다. 남편의 군인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한 주부는 감자를 만지작거리며 “지금 간식거리를 사 먹을 여유는 없다. 음식을 아예 못 사 먹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값싼 빵을 파는 국영 빵집 앞에는 사람들이 빵을 사기 위해 모여 있었다. 몇몇 사람은 가축을 먹이기 위해 빵 껍질을 모으고 있었다.

거리 한편에서는 ‘학생들에게 방과 후 수업을 해주고 돈을 받는 공립학교 교사가 나쁘냐, 국영 의료 체제에서 돈을 챙기는 의사가 더 나쁘냐’를 놓고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실 교사나 의사가 나쁜 건 아니다. 그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값싼 식량과 일자리, 교육,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테니 국민은 정치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것이 이집트 정부와 국민 사이 일종의 ‘계약 조건’이었는데 이 계약은 위태롭게 됐다. 정부가 주는 보조금과 공무원 봉급으로는 식량과 연료 가격의 상승을 감당할 수 없다. 이제 “국민은 정치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부분만 남은 셈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슈브라에서 알렉산드리아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차량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답은 정부가 올해 총 110억 달러(약 12조 원)에 이르는 유류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 휘발유 가격은 1갤런(3.78L)당 1.3달러에 불과하다. 빈곤층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유류보조금이 많은 만큼 대중교통에 대한 정부 지출은 줄어든다.

올해 이집트 정부는 교육에 60억 달러, 의료 분야에 30억 달러의 예산을 쓰기로 했는데 이는 유류보조금보다 적은 액수다. 식품과 연료 가격이 오르는데 교육과 의료에 대한 보조금을 줄이는 것은 정치적인 자살 행위다. 반면 석유를 생산하거나 국제적인 사업으로 거액을 벌어들이는 이집트인도 늘어나고 있다.

좋은 뉴스는 미국인들처럼 여유롭게 살 여유가 있는 이집트인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나쁜 뉴스는 훨씬 더 많은 이집트인이 점점 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집트인들에게나, 미국인들에게나 좋지 못한 일이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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