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홍수용]‘고환율로 유가충격 확대’ 내용 뺀 재정부

  • 입력 2008년 6월 10일 03시 00분


“긴 원문을 요약하다 보니 ‘부동산 규제를 폐지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 부분을 빠뜨린 것이다.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2007년 12월 9일, 당시 재정경제부 당국자)

“요약 과정에서 ‘고환율 정책이 한국 물가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OECD 지적이 빠진 것이지 일부러 누락하지는 않았다.”(2008년 6월 9일, 기획재정부 당국자)

지난해 12월 ‘OECD 경제전망’ 보고서를 요약하면서 재경부는 분양가 상한제와 분양원가 공개 등의 규제를 단계적으로 없애라는 정책 권고를 뺐다. 노무현 정부 당시 논란의 중심에 있던 정책이라 그랬는지 발표 시간을 미루기까지 했다.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을 수 있는 이런 누락에 대해 당시 재경부는 “시간에 쫓기다 보니 생긴 일”이라고 했다.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었다.

6개월쯤 지난 이달 4일 OECD는 한국경제 보고서에서 고유가로 인한 물가앙등을 우려하면서 원화 약세로 이 충격이 증폭됐다는 점을 동시에 지적했다. 하지만 재정부는 두 번째 요인을 빼고 보도자료를 작성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진 9일, 재정부 당국자는 시곗바늘을 돌려놓은 듯한 말을 했다. “기사 마감 시간을 고려해 보도자료 배포 시간을 2시간가량 앞당기다 보니 모든 내용을 담기가 힘들었다. 해당 대목이 누락된 것은 사실이지만 고의성은 없었다”는 해명이 6개월 전과 판박이였던 것.

보고서를 요약한 재정부 실무자는 꼼꼼한 데다 사안의 핵심을 잘 짚어 평소 능력을 인정받아 왔다. 그런 그가 첨예한 이슈와 관련한 설명의 주요한 부분을 뺀 자료를 만든 것이다. 재정부 입장을 고려해 고의로 뺐을 것이란 의심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돼 버렸다.

사실 ‘고환율 정책이 물가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는 분석은 시장에 충격을 줄 만큼 새로운 내용도 아니다. ‘최근 국내 물가상승 중에서 고환율이 미친 영향은 3분의 1가량’이라는 분석까지 나와 있을 정도다. 게다가 재정부도 이미 ‘높은 환율 유지’로 요약되는 이른바 ‘강만수(재정부 장관) 환율’ 정책에서 벗어나 물가를 감안해 환율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고 정권도 바뀌었지만 불리한 내용은 감추려는 정부의 고질적 태도가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공무원들의 이런 모습은 쉬 변하지 않는 것 같다.

홍수용 경제부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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