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인터넷 마녀사냥

  • 입력 2008년 6월 9일 03시 01분


미국의 철학자 존 롤스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특징으로 ‘합당한 불일치’를 지적했다. 다양한 이해와 신념이 공존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선 각기 합당한 의견이면서도 서로 일치하지 않는 현상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럴 때 상대방 주장을 적대시하기 시작하면 사회는 시종일관 살벌한 싸움터가 될 수밖에 없다. 최근의 촛불시위 역시 장기화되면서 반대 의견을 적대시하는 거대한 권력으로 바뀌고 있다.

▷촛불시위에 반대하는 또 다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대학생 이세진 씨의 사례가 그렇다. ‘수출무역 국가인 조국을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국민이 들고 있는 촛불은 국민이 꺼야 한다’고 주장하는 피켓을 들고 인파 속에 외롭게 서 있는 그의 용기는 높이 살 만하다. 일부 시위 참여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너 미쳤지” “너 뉴라이트에서 돈 받았지. 얼마 받았느냐” 같은 욕설과 위협을 가했다고 한다.

▷방송 진행자 정선희 씨는 촛불집회에 대한 발언으로 누리꾼의 맹공을 받다가 3개 방송프로그램에서 자진 하차했다. 그는 라디오방송에서 자전거를 도난당했다는 청취자의 사연을 읽어주다가 “아무리 광우병이다 뭐다 해서 애국심을 불태우며 촛불집회를 하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 범죄라고 생각한다. 큰일이 있으면 흥분하는 사람 중에서 이런 사람이 없으리라고 누가 알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사과방송을 했으나 결국 ‘가슴 깊이 반성한다’는 글을 홈페이지에 남기고 당분간 방송을 접었다.

▷인터넷에서 이세진 정선희 씨를 옹호하는 소수의 누리꾼들조차 ‘나는 쇠고기 재협상에 찬성하는 사람’ ‘나는 촛불집회 참가자’라는 전제를 달아 ‘순수성’을 강조한 다음에야 변호에 나서는 형편이다. 거리로 나온 시위대들이 자신들과 다른 견해에 대해서는 입을 틀어막고 있다. 민주사회의 약점이자 장점이기도 한 ‘합당한 불일치’에 대한 롤스의 해법은 절차적 민주주의였다. 서로 합의된 절차를 준수해 나가면 장기적으로 나은 결과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촛불시위는 연일 도로를 점거하며 절차적 합리성을 포기했다. 저마다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민주주의의 풍요 속에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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