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덕민]北에 식량을 어떻게 줘야 할까

  • 입력 2008년 5월 16일 03시 03분


알다가도 모를 일이 있다. 바로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이다. 우리 국민은 미국이 매우 강경한 정책을 취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부시 정부는 ‘악의 축’에서 ‘정권 교체’에 이르기까지 강경한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한때 일부 언론은 미국이 군사조치를 취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연일 보도했고, 정부는 전쟁을 막는 것이 최우선 과제인 양 주장하기도 했다.

美, 核과 분리해 식량 계속 보내

그런데 지금 보니 부시 정부는 사실상 말로만 강경했지 강경정책을 취한 적이 없다. 가장 강경했던 조치가 마카오의 한 은행에 있는 북한자금을 동결했던 일이다. 그것도 핵실험 이후 슬그머니 해제했다. 북한이 핵동결을 해제해도, 재처리를 해서 플루토늄을 늘려도, 핵 보유 선언을 해도,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해도, 심지어 핵실험을 해도 한 번도 미 항공모함이 동해상에 전개된 적이 없다.

과연 부시 정부의 인내 한계점(redline)은 어디인가? 핵무기나 핵기술을 제3자에게 유출시키는 ‘핵 이전’만은 결코 용인할 수 없다는 게 부시 정부의 설명이었다. 작년 9월 이스라엘 전투기들은 시리아의 비밀시설을 파괴했다. 파괴된 시설은 북한이 건설 중인 원자로로 북한 기술자들이 폭격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충격적 사실은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과 2·13합의가 이뤄지는 순간에도 북한은 핵 이전을 시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더 놀라운 것은 핵 이전이 부시 정부의 인내 한계점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덕분에 핵 이전 문제는 해결됐다. 우라늄 농축은 미래의 문제이기 때문에, 현재의 문제, 즉 플루토늄 문제 해결을 우선한다는 것이 부시 정부의 방침이다. 물론 ‘모로 가도 한양만 가면 된다’는 속담이 있지만, 결국 시리아 핵 이전, 우라늄 농축 그리고 보유한 핵무기 문제는 고스란히 미국 차기 정부의 몫이 될 것이다. 북한 핵문제의 완전한 해결까지는 산 넘어 산이다. 미국의 차기 정부에서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을 모두 무시하는 ABB(Anything But Bush) 정책이 나올까 걱정이다.

부시의 정책에서 한 가지 마음에 드는 것은 인도주의 정책이다. 북한에 가장 많은 식량을 지원한 나라는 놀랍게도 한국도 중국도 아닌 미국이다. 미국은 핵문제와 분리해 북한 주민에게 식량지원을 해왔다. 미국은 곧 50만 t의 식량을 제공한다. 식량문제는 인도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북한 식량난과 관련해 긴급지원이 없으면 수십만 명의 주민이 굶어죽을 수 있다는 경고가 국제사회에서 나온다. 성경에 따르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다. 대북 식량지원이 우리 정부의 부담이 될 필요는 없다.

지난 20년간의 경험을 보면, 북한은 예외 없이 한국 신정부에 대해 1년 이상 남북대화와 교류를 중단해 왔다. 햇볕정책의 김대중 정부도 1년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북한은 현재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정책에 대해 하듯 온갖 극언을 퍼부었다. 역사적 첫 정상회담 끝에 합의한 6·15공동선언 후에도 두 차례나 북한은 교류를 중단했다.

北, 국제사회에 해결방안 내놔야

어차피 식량을 줘도 남북관계가 풀릴 것 같지 않고 미국에 추수했다는 국내적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그래도 북한에 식량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북한 주민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식량난은 자연재해, 국제 곡물가 폭등, 중국의 식량부족 등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지만, 사실 대북지원에 대한 국제사회의 피로감도 주원인이다. 북한 정권은 수십억 달러가 드는 핵실험을 하면서도 식량문제를 10여 년간 해결하지 못했다. 일방적 지원이 가져오는 또 하나의 병폐다. 도대체 언제까지 식량지원이 필요한 것인가? 국제사회의 피로감을 고려할 때, 북한은 식량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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