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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30일 20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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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를 산 뒤에 운전해 보면 차 성능, 디자인, 하다못해 핸들의 묵은 때까지도 눈에 거슬리게 마련이다. 시운전할 때는 보이지 않던 하자가 돈을 치른 후에는 그렇게도 잘 보이는 게 이상할 정도다. 그래서 잘 아는 사람과는 중고차 거래를 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가 보다.
정권교체도 이런 거래와 비슷한 것 같다. 대통령 취임 선서는 그 시점에서 ‘있는 그대로’의 국가 운영권한을 위임받아 잘해 보겠다는 다짐일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국가 운영을 시작하려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어디 한둘이겠는가. 국민은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정치권을 보면 ‘아는 사람에게는 정권을 인수받지 말라’는 말이 있어야겠다 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만 4년이 다 돼가던 작년 1월 말 신년연설에서 “민생문제가 있지만 참여정부가 만든 게 아니라 물려받은 것”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카드 거품’은 물론이고 ‘양극화’도 김대중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랬던 그가 임기 말엔 “차기 정부가 참여정부 정책을 쉽게 바꾸지 못하도록 대못을 박고 싶다”면서 ‘권한’을 한껏 사용했다. 현상금까지 내걸면서 혁신도시 기공식을 앞당기도록 재촉하고 행사장에서 “다음 정부가 균형발전정책을 바꾸려 하면 (시민) 여러분이 지켜 달라”고 선동 같은 당부까지 했다. 노골적으로 ‘AS IS 조건’을 활용해 한국을 ‘특정한 상태’로 만들어 차기정부에 물려주려고 한 셈이다.
이명박 정부가 골치 아픈 현안에 대해 노무현 정부 탓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통합민주당이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개방과 관련해 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자 청와대가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내에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던 사안을 (대신) 설거지해 주면 고맙다고 해야 한다”고 되받은 것도 그중 하나다.
그렇지만 정부 출범 두 달이 지났으니 과거 정부 탓을 그만둘 때도 됐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종합적인 국익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으면 앞뒤 설명을 해가면서 국민을 설득해야지, 마치 노 전 대통령이 ‘잔치판’은 즐기고 설거지도 않고 나간 것처럼 몰아칠 일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으로 지지계층의 비난을 받는 바람에 잔치를 즐기지도 못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을 완화한 뒤 이명박 대통령은 “질 좋고 값싼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고 했고 ‘설거지’라기보다는 “국익을 위해” 한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임시국회가 ‘소몰이 국회’가 되는 등 반발이 거세진다고 해서 청와대가 노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분담시키려 한다면 모양이 좋지 않다.
설거지라 하더라도 ‘일하는 정부’를 내세웠으니 묵묵히 설거지를 해야 옳다. 국정현안 파일을 열어 보면 노 정부에서부터 내려온 숙제, 그 이전 정부부터 쌓인 해묵은 난제가 여럿 있을 것이고 일처리엔 설거지 전문가가 필요하다. 공기업 개혁, 교육 경쟁력 강화, 기업 규제 혁파 등이 그런 과제다. 이 정부는 불평 대신 우선 설거지 실력부터 발휘해 한국의 ‘AS IS’ 상태를 누구나 인정할 만큼 개선해 내야 한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