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대학 경쟁력, 돈 없이 안된다면

  • 입력 2008년 4월 22일 20시 53분


옥스퍼드대 존 후드 총장이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갔다. 고려대와 학생교류 및 연구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 위해 왔지만 방한 목적 중에는 옥스퍼드대 한국학 연구에 대한 한국기업의 지원을 요청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지난해 세계 대학 순위에서 케임브리지대와 함께 공동 2위를 한 옥스퍼드대이지만 후드 총장은 1위인 하버드대에 학생을 뺏기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모금하러 서울 온 옥스퍼드大총장

후드 총장은 논란의 인물이다. 그는 옥스퍼드대 역사상 최초의 외부인 출신 총장이다. 직선으로 총장을 선출하는 한국 대학들은 질겁할 일일지 몰라도 옥스퍼드대평의회는 헤드헌팅업체를 통해 그를 스카우트했다. 뉴질랜드 기업인 출신인 그는 1998년 자신의 모교인 오클랜드대 총장이 되면서 대학경영과 인연을 맺었다. 2004년 그가 ‘옥스퍼드대 개혁’이라는 사명을 띠고 총장으로 취임할 때 옥스퍼드대 교수들은 ‘800년 대학전통을 시장논리가 망칠 것’이라며 반발했다.

대학경쟁력 강화 요구, 학생 수 감소, 등록금 인하 압력 등 안팎의 위기에 직면한 한국 대학에 후드 총장은 어떤 시사점을 제공할지 궁금해 그의 강연회를 찾았다. 그런데 옥스퍼드대와 한국 대학의 고민이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후드 총장은 옥스퍼드대가 직면한 다섯 가지의 과제를 제시했다. 글로벌 경쟁의 심화, 교수연구와 학생교육을 지원할 기금 확보, 우수학생 확보, 대학재정의 투명성과 책무성 제고, 그리고 대학자율권의 수호가 그것이다. 얼마 전 취임한 손병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의 발언과 어찌 그리 비슷하던지.

대학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을 결정한다는 인식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대학은 그 나라를 이끌어갈 엘리트의 산실이고, 성장동력이 될 신기술 신사고의 모태이다. 각국이 일류대학 육성에 열을 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은 세계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장 많은 금액을 고등교육에 투자한다. 중국은 금세기 말까지 100개의 일류대학을 육성하겠다는 계획 아래 엘리트 대학에 대한 자금 지원을 3배로 늘렸다. 중동국가들도 오일달러를 대학에 쏟아 붓고 있다.

‘교육은 돈이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연구를 하려 해도 돈, 우수학생 유치를 위해 장학금을 주려 해도 돈이 필요하다. 영국 대학과 한국 대학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지만 다른 것은 재원 마련 해법이었다. 한국 대학은 등록금 의존비율이 74%인 반면 옥스퍼드대는 기부금 비율이 77%이다. 한국 대학의 기부금 비율은 4.2%다. 한국 대학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다가가려면 기부금 비중을 부지런히 늘릴 수밖에 없다.

영국 대학에 대한 최대 기부자는 여전히 영국 정부다. 하지만 정부 지원만 쳐다보기엔 상황이 다급하다. 그래서 후드 총장은 미국 대학처럼 헤지펀드, 사모펀드 등 다양한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위해 런던 금융가에서 투자책임자를 영입했다. 그러면서도 기부금을 늘리기 위해 총장부터 앞장서 뛰고 있는 것이다.

김밥할머니 ‘全재산’만 기다릴 건가

우리 대학들은 ‘기부’ 얘기만 나오면 기여입학제 얘기를 꺼낸다. 돈과 입학증을 맞바꾸겠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외국에서 학교기여자에 대한 입학 허용은 오랜 기여 전통의 결과이지 교환개념이 아니다. 한국 대학들은 기여입학제를 말하기 전에 기부금 모금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먼저 반성해야 한다.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 전 재산을 내놓는 김밥할머니만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울대가 미국 명문대를 벤치마킹해 처음으로 집중모금 캠페인을 펼친다고 한다. 노벨상급 세계석학 초청, 도서관 첨단화 등 학교사업을 메뉴별로 제시해 사업내용을 보고 돈을 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비전을 제시하고 투명성을 높임으로써 기부를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돈을 끌어오는 데는 전략과 발품이 필요하다. 한국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기금을 요청한 후드 총장에게 배울 것도 그런 거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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