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철희]韓日 ‘희망의 전주곡’ 울리나

  • 입력 2008년 4월 21일 02시 54분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마치고 오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에 나선다. 대통령 취임식 날 가진 정상회담에 이어 셔틀외교를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청신호다. 양 정상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만난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또한 이번에는 일본 TBS방송이 주최하는 시민과의 대화 등 일본 국민과 직접적이고 솔직한 대화에 나서 한국을 잘 알릴 수 있는 기회도 가진다. 경단련과의 오찬은 경제를 앞세우는 대통령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것이다. 실질적인 투자 유치의 희망을 안겨줄 수 있기를 바란다. 서로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상대방만 탓하고 과거사만 들춰내던 지난 몇 년간을 회고해 보면 반가운 일들이다.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양국 간 신뢰와 유대를 강화할 절호의 찬스다.

요즘 일본인들을 만나 보면 이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골치 아픈 현안이 두드러지지 않는 것도 이유의 하나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르기를 바란다면 오산이다. 돌다리도 두들기며 건너려는 일본인의 조심스러움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기대가 높을수록 서둘러서는 안 된다.

정상회담, 신뢰-협력 보여주길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희망의 전주곡’ 정도를 보여 주기 바란다. 한일 양국 간에는 협력의 새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 오랜 기간을 한일 양자 간의 이슈에 매달렸고, 1998년 한일 공동선언 이후 양국은 북한 문제를 포괄하는 미래지향적 파트너십을 지향해 왔다.

이제는 한일 양국이 한반도와 주변 지역을 넘어서는 국제사회의 동반자이자 동아시아 협력의 견인차로 자리매김할 때다. ‘양자를 넘어서 지역과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글로벌 코리아에 걸맞은 한국의 외교지향점일 것이다. 기후와 환경문제에 힘을 쏟고, 공적개발원조(ODA)와 국제평화활동에 대한 국제기여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는 면에서도 양국의 이해는 일치한다.

하지만 전주곡만 듣고 국민이 만족스럽게 생각할 것 같지는 않다. 상호 합의하에 과거사문제를 적정하게 ‘관리’하고, 예측가능하고 실현성이 있으며 지속할 수 있는 미래의 협력을 준비하는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야 한다. 과거사는 양국 정상 모두에게 골칫거리다. 지뢰밭과 같은 과거사문제는 서로 손잡고 조심하며 건너지 않는 한 항상 폭발성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꼭 이번이 아니더라도 향후 양국 정상은 과거사문제와 관련하여 ‘역사적 사실의 전면 공개 및 투명화’ ‘정치적 상호비방 및 감정적 대응의 억제’ ‘갈등 발생 시의 공동 대응’이라는 행동의 3대 준칙(code of conduct)에 합의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일 양국이 서로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고 협력을 복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때 신뢰에 기반한 우호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과거사문제의 관리만으로는 협력을 심화하는 계기를 만들 수 없다. 한일 양국은 미래의 비전을 공유하고 지역의 장래를 공동 설계하는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1998년에 이루어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10주년이 되는 올해 후반기쯤 향후 10년간 한일관계를 이끌어갈 양국의 공동비전을 담은 ‘한일 신시대 공동선언’을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작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양국의 현인들로 구성된 가칭 ‘한일공동비전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내실 있는 연구를 하고 양국 정상들에게 결과물을 보고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추어지길 기대한다.

양국 전략적 동반관계로 가야

만약 한일 양국이 미래비전과 전략을 공유할 수 있다면 이에 바탕을 둔 ‘역산형(逆算型) 협력’의 틀을 만들 수 있다. 미래의 공통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지금부터 무엇을 해 나갈지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정상들만의 힘과 의지만으로는 안 된다. 양국 간 지적 교류와 전략적 대화를 확대 심화하고, 대학생 및 청소년의 교류를 증진하며, 공동연구의 추진 등을 통해 ‘버릇처럼’ 협력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형성되어야만 가능하다.

꿈이 없는 한 꿈은 이루어질 수 없다. 미래를 준비하고 협력을 습관화할 때 양국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넓은 새로운 외교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다. 결실 있는 정상회담을 기대한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