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한영]17대 국회, 국민에 대한 마지막 예의

  • 입력 2008년 4월 14일 03시 00분


이번 총선을 통해 한나라당은 국회 과반의석을 확보해 18대 국회의 원내 제1당이 됐다. 총선 결과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대체로 현 정권의 안정적 국정운영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신임과 과거 정권의 국정운영 난맥상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는 큰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이념-파벌 투쟁은 이제 그만

하지만 그 이상의 흥미로운 교훈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는 전투적 색채가 상대적으로 강한 정치인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대거 낙선했다는 점이다. 386세대 의원들을 포함한 구여권 및 기타 진보세력에는 물론이고 최근 집권당 공천 갈등의 핵심으로 지목된 실세들에게도 국민들은 이념적 파벌적 투쟁은 그만하고 근신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다른 하나는 수차례 학습효과에 의해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이 냉철한 실용주의로 변모했음을 실감케 했다는 점이다. 정치적 명분을 표방한 견제론보다는 경제적 실리를 강조한 안정론의 대열에 더 많은 유권자들이 동참했다.

정치권 일반에 대해서는 승패와 관계없이 국민들이 누적된 실망과 피로감이라는 경고장을 보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전국 평균 46%라는 역대 최저의 투표율은 전 국민의 54%가 그 어떤 정당도 아닌 불편부당(不偏不黨)의 지지자였음을 보여 준다. 절반 이상의 국민이 기존 제도권 정치에 대해 강한 불신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은 이 54%는 잘만 하면 자기 정당을 지지할 수 있는 매력적인 블루오션이며, 정치투쟁이 아닌 정책경쟁에 의해서만 그 블루오션을 쟁취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공교롭게도 국민들은 비교적 일찍부터 정치권 태도의 진정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됐다. 5월 말까지 유효한 17대 국회가 임시국회를 열어 미결 민생법안 처리에 나설지, 아니면 18대 국회에 그 공을 넘기고 사실상의 개점휴업에 들어갈지에 대한 향방과 정당별 입장이 초미의 관전 포인트다.

참고로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이 2월 임시국회에서 국회 통과를 합의하고도 아직 처리하지 않은 법안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비롯해 무려 30여 개다. 그 가운데에는 과거 정권의 치적이랄 수 있는 한미 FTA 비준동의안 외에도 일명 ‘혜진·예슬법’이라 지칭되는 미성년자 피해 방지 처벌법과 식품 관련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식품안전기본법, 그리고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를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한 법 개정안 등 국가적으로 매우 시급한 민생법안들이 포함돼 있다.

한나라당은 17대 국회의 종료 이전에 서둘러 민생법안들을 처리한다는 방침인 반면 아직까지 민주당의 자세는 냉랭하다. 패자에 대한 예의도, 헌정 사상의 전례도 없으며 의회 원리를 무시한 한나라당의 독선이라는 것이 반대 이유이다. 총선 패배에 따른 당내 분위기 수습만 해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내부적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민주당은 엄연한 17대 국회의 원내 제1당이다. 게다가 총선 결과에 나타난 민의는 거창한 공약을 앞세우기보다는 없던 전례를 만들어서라도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자의 손을 들어주겠다는 것이다.

FTA-혜진예슬法결자해지를

그러므로 17대 국회가 개점휴업이라는 역선택에 안주하게 된다면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포용과 상생의 정치를 주문한 국민들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5월 임시국회가 개회된다 해도 모든 민생법안을 포괄 처리하기에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결국 현실적인 타협안은 5월 임시국회 개원 후 중요도에 따른 민생법안의 선별 처리를 추진하는 것이다. 17대 국회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국민들이 기대하는 마지막 역할에 충실하기 바란다.

이한영 중앙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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