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카페]‘블랙 컨슈머’에 우는 식품업계

  • 입력 2008년 3월 27일 03시 01분


영화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에서 주인공 백윤식은 두루마리 휴지를 풀어 “명시된 것보다 8mm나 모자란다”며 제지 회사에 시비를 걸거나 ‘○○볼’ 과자에 초콜릿 양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돈을 받아 냅니다.

백윤식은 극중에서 자신을 기업의 부도덕한 행위를 고발하는 ‘정의의 파수꾼’이라고 칭하지만 사실은 ‘블랙 컨슈머’인 셈이죠. 블랙 컨슈머란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며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악덕 소비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이물질 사고에 식품업계는 거의 공황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때를 틈타 블랙 컨슈머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평소보다 2, 3배 이상 악성 민원이 늘었다고 하는군요. 이미 보상을 받은 소비자가 “방송사 제보를 망설이고 있는데…”라며 다시 보상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 유통업계와 식품업계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칫 잘못 대처했다간 여론의 지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민원 접수 후 3시간 안에 소비자를 직접 만나 해결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고 전했습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꼴’은 피하고 싶어서입니다. 식품업체로서는 조용히 처리하려다 보니, 블랙 컨슈머와 타협을 해야 하고 이것은 또 다른 블랙 컨슈머를 낳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는 우리 기업의 87%가 소비자의 악성 민원에 시달린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 대부분이 폭언이나 폭설, 인터넷 유포 위협 등을 서슴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업과 소비자는 수레의 두 바퀴처럼 공존하는 관계입니다. 블랙 컨슈머가 기승을 부릴수록 그 비용은 고스란히 제품 원가에 반영돼 선량한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게 마련입니다.

식품업계에서 블랙 컨슈머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신뢰를 다시 얻는 것이 관건입니다. 이를 위해 기업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철저한 품질 및 리스크 관리 강화겠죠. 이와 함께 일부 ‘질 나쁜 소비자’에 대한 경계도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정효진 기자 산업부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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