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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2월 2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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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선진화 앞당겼나
의사당에서 여성 의원을 자주 보게 된 것은 같은 여성으로서 흐뭇한 일이다. 그러나 여성 정치인이 많아지는 것이 정말 정치선진화의 지표인지, 여성 정치인이 여성의 이익과 관심사에 부합하는 일을 해 왔는지는 한 번쯤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여성 공천 확대요구의 명분도 있지 않겠는가.
먼저 여성 정치인 비율이 정치선진화를 앞당기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런 논리라면 여성 의원이 48.8%로 세계 1위인 르완다가 일등국가고, 여성 의원이 20.1%로 50위인 북한이 16.3%로 65위인 미국보다 정치선진국이란 얘기가 성립한다. 물론 여성할당제를 도입한 노르웨이 핀란드 같은 북유럽 국가들의 정치 수준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 나라의 의회 규모라고 해야 우리나라 시의회 정도인 만큼 수평적 비교는 곤란할 것 같다.
오스트리아 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스와니 헌트 하버드대 여성정책연구소장은 지난해 포린어페어지에 기고한 글에서 여성 정치인의 이점은 첫째 깨끗한 개혁정치를 실현하는 것이고, 둘째 여성 관련 이슈와 정책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공직과 노동시장에 진출한 여성의 비율이 높을수록 그 나라의 부패 정도는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여성 의원에게 기대하는 바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이가 17대 국회가 그전보다 깨끗해졌다고 여긴다. 하지만 여성 의원 증가가 ‘상대적으로 깨끗한 국회’를 만드는 데 구체적으로 기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뇌물수수 의원 명단에 여성 의원도 이름을 올렸고, 17대에 유독 많았던 여성 대변인의 ‘입’은 남자 못지않게 ‘터프’했다. 손봉숙 의원은 그제 21세기여성포럼이 주최한 ‘17대 여성 의원 의정활동 평가토론회’에서 “여성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상대당 의원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볼썽사나운 야유를 퍼붓는 등 잘못된 남성의 정치문화를 좇아가는 것이 가장 안타까웠다”고 토로했다.
여성 의원 증가는 양성평등 및 가족 관련 정책개발과 입법 노력으로 이어졌다. 가장 큰 성과가 2005년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이다. 하지만 당과 이념을 초월해 여성 관련 이슈를 이끌어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패러디 사건에 여당 여성 의원들은 침묵했고, 지난주 국방위를 통과한 군필자 가산점 법에는 놀랍게도 여성 의원이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다. 그것도 비례대표 의원이 말이다.
공천에 앞서 냉정한 평가 있어야
여성계는 18대 총선에서 지역구 공천의 30%를 할당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얼마 전 한나라당 여성 의원들도 같은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지역구에도 여성을 많이 공천하라는 주장을 나도 적극 지지한다. 하지만 현직 여성 의원들의 기자회견 내용은 결국 자기 자신을 공천하란 얘기로 들려 아쉬움이 남는다.
한 남성 의원은 인터뷰에서 “대표성을 어렵게 얻은 여성 의원들이 의외로 후배를 키우지 않는 모습을 본다”고 말했다. 대다수 여성 의원이 보좌진으로 남성을 선호하는 것을 비꼰 말이다. ‘젠더’에 대한 정체성과 소신도 없이 당론과 당내 서열에만 끌려 다니고 ‘얼굴마담’이나 할 요량이라면 굳이 여성 의원이 많이 나와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여성 정치인은 시대적 요구이지만 여자라서가 아니라 능력이 발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치마만 입었다고 공천할 수는 없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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