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승호]소작농과 食母

  • 입력 2007년 10월 21일 21시 50분


1986년만 해도 전국 논의 30% 이상이 임대돼 경작됐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소작농을 보호하고 농지임대차를 양성화하겠다며 농지임대차관리법을 제정했다. 임대차계약은 서면으로 하도록 하고, 임대료에 상한을 두는 내용이었다. 임대기간도 3년 이상으로 제한했다. 땅주인들이 좋아할 리 없었다. 계약서가 ‘자경(自耕)하지 않는다’는 물증이 될 수 있어 거부감이 더 컸다. 자연히 “이제 땅을 그만 부치라”는 통보가 늘어났다.

느닷없이 소작 해지 통보를 받은 농민들은 새 법 때문에 사달이 났음을 뒤늦게 알고는 “농민 죽이는 법 철폐하라”며 시위를 했다. 사태가 커지자 황인성 당시 농림수산부 장관이 TV에 나와 “법은 만들었지만 시행은 안 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의 체면 때문에 새 법을 당장 없애지는 못했고(이후 폐지), 시행령을 마련하지 않는 방법으로 조용히 사문화(死文化)했다.

‘비정규직법 때문에 오히려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대량 해고된 최근 비정규직 파동과 얘기의 구조가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작법 파동을 겪은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별 교훈을 얻지 못한 듯하다. 소작농 문제는 이후 농촌에 일할 사람은 없고 노는 땅이 늘면서 사라졌다.

1980년대엔 소작농뿐 아니라 ‘식모’ 역시 흔했다. 당시 지어진 고급 아파트의 부엌 옆엔 ‘식모방’이라는 쪽방이 있었다. 식모에 대한 인권 침해도 빈번했다. 하지만 요즘은 식모처럼 ‘상주하는 가정부’를 두려면 상당한 대우를 해 줘야 한다. 외려 집주인 쪽이 눈치를 본다. 식모의 인권 문제가 해소된 것은 ‘식모 인권 증진에 관한 법률’ 같은 것을 제정해서가 아니다. 식모보다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겨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져서다.

1993년 미국의 톰 하킨 상원의원이 미성년자를 고용해 생산한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아이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방글라데시의 공장에서 만든 옷을 파는 월마트를 겨냥한 입법이었다. 놀란 방글라데시의 공장들은 아동 고용을 중단했다. 그 아이들은 학교로 갔을까?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이렇게 보고했다. “아이들은 더 열악한 곳에서 일하거나 거리를 방황했고, 특히 매춘을 시작한 소녀가 많았다.”

대선을 앞두고 비정규직에 대해 ‘성장을 통해 해결하자’ ‘정규직 전환 기업의 법인세를 깎아 주겠다’ ‘정규직 전환을 강제하겠다’는 등 후보마다 처방이 엇갈린다.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비정규직 때문에 차별이 생겼다기보다, 일자리가 귀하니까 ‘사람값’이 떨어져 비정규 저임노동이 늘어난 것이다. 정말 먹고살기 힘들 땐 미성년 고용처럼 비정규 일자리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 물론 이 문제가 ‘식모 인권’처럼 절로 해결되기만 기다릴 수는 없다. ‘좋은 법’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좋은 일자리’가 많아져야 문제가 해소된다.

한림대 김인규(경제학) 교수는 “인권이나 민주주의는 일종의 사치재(奢侈財)로, 소득이 어느 정도 돼야 수요가 생긴다”고 말했다. 어느 나라에나 사회적 약자가 있다. 이들이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자활할 수 있도록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싶다면 일자리를 만들고 사람값을 끌어올려야 한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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