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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10월 20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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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수요와 공급 상황을 반영하는 온도계다. 비싼 주택가격은 주택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함을 알려 준다. 분양가를 낮춘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분양가 규제에만 매달리다 보면 새 주택의 공급이 줄어 문제가 더욱 꼬인다. 수요보다 공급이 적어 생기는 문제는 공급을 늘려서 풀어야 한다.
“내 집이지만 내 집이 아닌 듯”
1991년 이후 국내 주택시장 상황이 그걸 보여 준다. 전국에서 수년간 300만 채에 가까운 주택을 공급했다. 특히 분당 등 수도권 5개 신도시에서 좋은 아파트가 쏟아져 나오자 서울 강남을 필두로 전국의 주택가격이 떨어졌다. 지속적인 주택 공급 확대가 1990년대의 10년간을 주택 문제가 없는 시기로 만들었다.
주택 공급 확대는 등한시한 채 분양가만 낮추는 방식으로는 시장 전체의 주택 가격을 낮출 수 없다. 추첨 운이 좋아 새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에게 특혜만 몰아줄 뿐이다. 소위 반값 아파트는 지금까지 나온 정책 중 최악이다. 환매조건부나 토지임대부 분양으로 분양가를 낮추겠다는 발상인데, 이것이 최악인 이유는 애초에 누구도 원하지 않는 집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땅은 빼고 건물만 자기 소유인 집, 즉 토지임대부 아파트를 원하는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환매조건부도 그렇다. 대다수의 한국인에게 주택만큼 확실한 노후 보장 수단은 없다. 그런데 환매조건부 주택은 정해진 이자만 받고 정부에 되팔아야 한다. 노후 대책이 될 수 없다. 자신의 노후에 대해 무책임한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노후 보장책이 될 수 없는 주택을 원할 리 없다. 사회운동가나 정치가에게는 이상적일지 모르지만 소비자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것이 토지임대부와 환매조건부 아파트다. 비싼 땅과 건축자재를 투입해 쓸모없는 아파트를 생산한 셈이다.
지금과 같은 대규모 미분양 사태는 이 정책을 제안했던 사람들이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인지 모른다. ‘판교신도시처럼 진짜 소비자가 원하는 아파트를 반값에 준다면 당연히 청약경쟁률은 높고 그렇게 되면 투기를 조장한다고 여론의 비난을 받을 것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제대로 된 소유권을 갖지 못하게 하자. 청약경쟁률이 낮아질 것이다.’
이런 의도와 발상에서 나온 것이 토지임대부이고 환매조건부가 아닐까. 그들이 의도했던 결과는 이번 경기 군포시의 반값 아파트에서 15% 청약이라는 현실로 나타났다. 이제 와서 서로 책임을 떠넘기느라 삿대질을 해 대는 모습은 보기에 안 좋다.
주택문제 꼼수로는 못 풀어
소유할 대상을 줄인다고 사람의 소유 욕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줄어든 그것을 서로 차지하려고 더 심한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소유할 것을 많이 만들어 줘야 소유 욕구가 해소돼 덜 집착한다. 경제학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반값 아파트가 실패한 것은 반값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시장의 기본적 작동 원리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원하는 모든 소비자에게 반값으로 집 한 채씩을 공급할 수 없는 한, 반값 아파트 정책은 꼼수일 뿐이다. 운 좋은 몇 명에게 로또를 안겨 줄 뿐인데 마치 정부가 대단한 것을 국민에게 주듯이 착각하게 만든다. 그보다는 분양가가 비싸더라도 소비자가 원하는 곳에 좋은 집의 공급을 늘려 차츰 집값을 떨어뜨리는 정책이 진정으로 소비자를 위하는 길이다. 주택정책에서도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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