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신화]한국이 안 보인다

  • 입력 2007년 9월 6일 19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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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맹수가 없는 호주에서 가장 사나운 야생동물은 ‘딩고’라 불리는 들개라고 한다. 호주 원주민들에 의해 동남아시아에서 유입된 개가 야생에서 살면서 포악하게 변했다고 하니, 대륙의 산맥을 타고 이동하는 뭇 맹수가 멀리 떨어져 있는 해양 국가 호주까지는 진출하지 못했나 보다.

미국-일본-호주 안보 3각동맹

지정학적으로 볼 때도 호주에 있어 직접적인 안보 관심사는 북쪽으로 약 500km 떨어져 있는 동티모르의 불안한 정정(政情)뿐이라 할 정도로 이 해양 국가는 군사적 위협에서 한발 비켜선 ‘안전한’ 곳이다. 그러면서도 2000만 명 남짓한 인구 때문에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인지 인구 2억 명의 근린국(近隣國) 인도네시아를 ‘가상의 주적’으로 안보체제를 구축하고 만일의 사태에 늘 대비하고 있다.

호주의 외교통상백서인 ‘국익 증진을 향하여(Advancing the National Interest)’를 보면 국제 관계에서 국가와 국민의 안보 및 번영 증진을 위해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 미국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1952년 미호 동맹을 맺은 이래 6·25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과 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주요 전쟁과 여타 테러와의 전쟁에 미국과 보조를 맞춰 참전했을 뿐 아니라 환경 질병 재난과 같은 ‘비전통적’ 안보 위협에도 미국과 적극적인 협력 관계에 있다.

최근 호주의 이러한 행보는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정세와 맞물려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올해 3월 호주의 존 하워드 총리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양국 간 ‘안전보장에 관한 공동선언’을 통해 사실상 ‘준동맹국’ 관계를 선언했다. 그 후속 조치로 4월에는 미국-일본-호주 3국이 첫 연합 군사훈련을 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국가들의 태평양 연안 해양세력 구축에 나섰다. 더 나아가 8월 인도를 방문한 아베 총리는 3국에 인도를 더하여 4각 안보협력 연대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마침내 4일 4개국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들 국가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강조했지만 중국은 이들 연합이 자국을 고립시키고 대양 진출을 막으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실제 중국도 지난달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인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4개국과 더불어 연합 군사훈련을 했다. 이렇듯 동북아를 둘러싸고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맞서면서 ‘새로운 냉전질서’가 등장할 것이라는 긴장감마저 나돈다.

그러나 이런 대변혁의 전조 속에서 이 지역의 전략요충인 한반도의 역할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은 1945년 종전 이래 일본 안보의 ‘사활적’ 존재였고 6·25전쟁과 더불어 혈맹관계인 미국에는 도전 국가의 부상을 막는 ‘최전선’이었는데 미래의 지역 청사진을 그리는 데 있어 한국이 안 보인다.

현 정부가 외교 지침으로 내세운 동북아 균형자론은 한국의 외교적 자주성을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입지를 축소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작전통제권 전환 등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 자주권 확대를 위해 노력해 왔지만 감정이 앞선 양자 관계 운영으로 동맹국으로서의 신뢰가 상처받게 되었다. 중국과 러시아 또한 ‘한국의 미국으로부터 거리 두기’는 지지하지만 자체 역량 강화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한국군의 독자적인 작전능력 강화를 위한 미국의 무인정찰기 도입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결국 미국 일본과 소원해졌고 그렇다고 중국 러시아와 친구가 되지도 못했다.

美-中 패권경쟁 속 외톨이 신세

이렇듯 미국과 중국이 동맹체제 구축을 통해 치열한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지정학적 접점인 한반도에 위협이 없을 것이라고 자평하고 스스로의 대응 능력을 믿는 것은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 어느 쪽에도 들지 않고 ‘담장 위에 앉아’ 사태를 관망하려는 시도는 자칫 어느 쪽으로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담 위에 홀로 외롭고 위태롭게 서 있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 비해 안보 위협이 훨씬 적은 호주의 적극적인 동맹 참여 정책은 국익을 위해 필요한 현명한 사고방식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세계질서의 변화를 인식하고 자신과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들과 ‘동행’함으로써 국제질서에서 자신의 지분을 조용히, 그러나 실속 있게 챙겨 가고 있는 모습이 부럽기까지 하다.

이신화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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