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최종욱]약육강식, 과연 그게 다일까요?

  • 입력 2007년 8월 2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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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계를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말한다. 약육강식은 약자는 먹히고 강자는 먹는다는 지극히 잔인한 용어다. 나는 ‘약자는 사라지고 강자는 남는다’는 좀 더 부드러운 표현이 오히려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약육강식이란 현상은 동물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식물도 ‘천이’라는 과정을 거쳐 우점종만이 숲의 지배자가 된다. 소나무 숲 같은 경우는 뿌리에서 나오는 독한 물질로 인해 흔한 잡풀조차 자라지 못한다. 우리가 숲에서 좋다고 호흡하는 피톤치드 같은 물질도 알고 보면 식물의 전쟁 무기인 셈이다.

세균이나 곰팡이 같은 미생물계에서도 약육강식은 예외 없이 나타난다. 유산균이 차지한 발효식품에는 부패균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고 병원균이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이 균형이 무너진다면 장에 유산균 저장 창고를 가진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병원균의 침습으로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즐기는 알코올이나 항생제도 세균이나 곰팡이가 서로 강자가 되기 위해 내놓는 무기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동물처럼 손과 발을 이용해 직접 싸울 수 없다는 점이다.

세상이 약육강식의 원리에 의해서만 돌아간다면 정말 살고 싶지 않는 세상이 돼 버릴 것이다. 날마다 스트레스에 시달려 살아갈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편적이라는 이 법칙이 알고 보면 광대한 생물현상 중에 극히 일부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안심하고 생을 영위할 수 있다. 약육강식이란 용어가 동물계의 전부를 설명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우선 동물이 새끼를 키우는 모습을 보자. 새끼들은 세상에서 가장 약자로 분류할 수 있다. 약육강식이라면 예외 없이 새끼들이 치이고 먹혀야 하지만 오히려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엄격한 위계사회인 원숭이 사회에서 새끼는 우두머리의 머리를 밟고서 먹이를 맨 먼저 볼에 잔뜩 집어넣어도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이종을 섞어 놓아도 보통 새끼나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어미는 집단 보호를 받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여러 초식동물이 섞여 사는 곳에서 흑염소 새끼 한 마리가 치열한 전쟁터인 먹이통 한가운데 태연히 누워 자는 모습은 전쟁터에 피어난 한 떨기 장미꽃을 연상시킨다.

단독생활을 영위한다는 호랑이나 표범은 사파리 내에 그렇게 많은 수를 섞어 놓아도 예상외로 평화롭다. 심지어 이종 간의 사랑으로 라이거나 타이곤 같은 이종의 피가 섞인 새끼를 생산하는 일이 벌어진다. 약육강식이란 단어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동물원에서도 형제 중에 유난히 작고 병약한 막냇동생을 둔 호랑이 그룹이 있었다. 이상하게 아픈 동물은 성질이 사나워져서 먹잇감이 들어오면 다른 형제들이 얼씬도 못하게 으르렁거렸다. 형제들은 모른 척하고 슬슬 피해 주는 척했다. 동생이 질병 말기에 이르자 어느 날 보다 못한 형제들이 숨을 끊어 주었다. 동정심에서 안락사를 시켰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례들처럼 에누리가 전혀 없는 식물이나 미생물보다 오히려 동물계에서 약육강식과는 동떨어진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생물 교과서에서 비판 없이 사용하는 이런 호전적인 용어를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진화론도 상당 부분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생물현상은 학자의 이론만으로 규정짓기에 너무나 복잡다단하다. 생물은 지금도 변하고 있다. 약육강식이 동물계를 일반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정확한 단어인지 토론하고, 필요하다면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최종욱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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