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선의 본질 흐리는 ‘주민등록 공개 쇼’

  • 입력 2007년 7월 1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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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대선주자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그제 자신들의 주민등록초본을 공개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도 공개 용의를 밝혔다. 한나라당 박근혜 경선후보는 어제 주민등록초본을 비롯해 당 검증위원회에 제출한 다른 신상 자료들까지 공개했다. 정 씨는 한 발짝 더 나가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정동영의 주민등록초본을 발급해 가도 전혀 문제 삼지 않겠다”는 말까지 했다.

주민등록초본은 개개인의 이름 주소 주민등록번호 전입일 병역사항 주소이력 등이 적힌 공문서다. 자신이 공개하는 것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아무나 떼 가도 좋다”는 말은 스스로 법의식(法意識)이 없음을 실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가벼운 법의식이 불법적으로 남의 사적(私的) 영역을 들춰내 공격 자료로 쓰는 공작정치로 이어질 수 있다.

대통령 경선후보들에 대한 검증은 시간을 충분히 갖고 철저하게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당 검증위의 자료 제출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않은 한나라당 이명박, 박근혜 후보도 문제가 있다. 대선주자 검증에 필요한 신상 자료와 재산 관련 공부(公簿)를 좀 더 일찍 공개해 국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선거법을 개정하는 일도 필요하다. 당장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대선주자 스스로 공개하자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

그러나 지금 일부 대선주자들의 행태는 실망스럽다. 이명박 씨와 관련된 주민등록초본 불법발급 행위가 부각돼 검증이 뒷전으로 밀리는 듯하자 이에 맞대응하는 일종의 쇼나 다름없다. 그 이면에는 “검증이 우선이지, 주민등록초본을 불법으로 발급받은 게 무슨 대수냐” 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

대통령 경선후보 검증은 나라의 안녕과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책임질 적임자인지를 가리는 절차이다.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대통령이 된 뒤에 과연 어떤 일을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잣대가 돼야 마땅하다. 도덕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사를 자주 다니지 않았다는 것이 그것을 보여주는 척도일 수는 없다. 고작 주민등록초본 주소란에 기록사항이 적은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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