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선관위에 ‘무슨 말 할까요’ 묻는 어깃장 대통령

  • 입력 2007년 7월 10일 22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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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지난달 2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앞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회견이나 그 밖의 방법으로 발언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해 선거법 위반 여부를 가려 달라”는 질의서를 보냈다. ‘대운하보고서 유출이 청와대의 정치공작이라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의 주장에 대한 반박은 어느 선까지 가능한지’ 등 몇 가지 예시까지 곁들였다. 이에 대해 선관위가 “앞으로 발언할 내용의 위법 여부에 관해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하자 청와대는 어제 유감을 표시하면서 “법리적 검토를 거친 뒤 의견을 밝히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선거법에 저촉되는 발언을 하고서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잘못을 지적한 선관위를 상대로 어깃장을 놓고 있는 꼴이니 딱하다. 선관위가 한나라당과 그 당의 대선 예비후보들에 대한 대통령의 폄훼 발언을 선거법 위반이라고 결정한 것은 정당한 법 절차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승복하지 않고 계속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발언의 선거법 위반 여부는 대통령 자신이 상식과 관련 법, 판례 등을 참조해 판단할 문제다. 노 대통령 자신이 변호사 출신이기도 하지만 청와대에는 문재인 비서실장을 비롯해 법에 밝은 참모가 많다. 그런데도 선관위에 이런 질의를 한 것은 선관위를 모독하고 선관위의 결정을 지지하는 다수 국민을 조롱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모두 세 차례나 선관위로부터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 위반’ 결정을 받았다.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발언을 삼가라는 강력한 경고였지만 번번이 이를 무시했고 이로 인해 탄핵소추까지 당했다. 자숙해야 마땅함에도 지난달 21일엔 헌법소원을 냈고, 그것도 모자라 “앞으로는 발언하기 전에 일일이 선관위에 질의해 답변을 받아서 하겠다”는 오기(傲氣) 가득한 발언을 기어이 실행에 옮겼다.

임기 말 대통령은 대선에 엄정한 중립을 지켜야 한다. 선관위를 상대로 괜한 시비나 걸 일이 아니다. 그럴 여유가 있다면 법과 헌법기관을 존중하는 자세부터 보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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