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백수 교육, 대학은 결백한가

  • 입력 2007년 7월 5일 19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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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내신 반영비율을 둘러싼 ‘내신의 난(亂)’은 대학의 승리로 평정되는 분위기다. 대통령이 귀국해 뒤집지만 않는다면.

우리 사회 지성(知性)의 상징인 대학 총장들을 주르르 앉혀 놓고, 반(反)지성의 대표 격인 대통령이 “한국의 지성사회에 대해 우려한다”며 훈계하는 모습은 대입에 관심 없던 국민까지 들끓게 했다. 1960년대 중국 문화혁명이 부활했나? 국민의 59%가 “내신 반영은 대학에 맡겨라”라며 대학 편에 선 데는 이런 대통령에 대한 정서와 드디어 대학이 일어섰다는 기대가 상당 부분 작용했다.

교수는 경쟁 않고 수험생만 경쟁?

대통령이 개헌 주장을 철회했듯, 내신 확대 정책도 접는다 치자. 이제야말로 대학은 경쟁적으로 인재를 키워 내는 경쟁력 있는 기관임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동네 헬스클럽도 ‘2개월 안에 8kg 못 빼면 환불’해 준다는 세상이다. 한 해 등록금으로 중산층 가구 월평균 소득의 두서너 배를 몇 년씩 꼬박꼬박 받으면서 졸업생이 취업이 되든지 말든지, 영어나 전공 실력이 부족해 뒤처지든지 말든지, ‘네 탓’으로만 돌린다면 정권과 다름없이 무책임하다.

3불(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금지) 정책 폐지가 없는 한 대학 경쟁력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3불 정책은 정부가 대학 자율성을 부정하고 교육을 이념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상징적 제도이므로 폐지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꼭 3불 때문에 대학 경쟁력이 못 컸다고 할 순 없다.

경쟁력은 경쟁이 치열할수록 커지는 법이다. 수험생과 고교, 학부모만 죽어라 경쟁시키고 대학은 승자만 골라 편하게 가르치겠다는 식이어선 불공평하다. 대학도 교수도 치열하게 경쟁하되, 논문 편수가 아니라 학생들이 거둔 성과에 따라 평가되고 공개돼야 한다. 그래서 경쟁력 없는 대학과 교수는 반드시 퇴출돼야 창창한 젊은 인생의 돈과 시간 허비도 줄일 수 있다.

등록금 자율화나 지원금 대폭 확대가 없으면 대학 경쟁력을 못 올린다는 주장도 지금은 안 먹혀든다. KBS가 TV 수신료를 1500원 더 올리겠다는 것도 ‘공정 방송 전엔 안 된다’는 게 국민 정서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낸 한국 대학평가 보고서엔 “교수들이 봉급이나 건물, 자율성 문제에 더 신경 쓰고 어떻게 잘 가르칠지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분명히 나와 있다. 일류 대학조차 교실 강의 위주여서 문제 해결 능력과 창의적 사고, 의사소통 기술을 키우지 못한다는 혹독한 지적도 있다. 새로운 해결책을 창안해 복잡한 문제를 푸는 능력이 ‘탤런트’이고 세계는 치열한 탤런트 경쟁 중인데, 국내 대학은 이걸 못 길러 준다는 얘기다.

영국 대학에서 연수한 한 명문대 학생은 “강의와 세미나로 번갈아 진행돼 일주일에 5권 이상 책을 안 보면 수업을 못 따라갔다”며 한국에서 대학 4년간 이렇게 공부했다면 얼마나 많은 걸 배웠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올해 자립형사립고와 특목고 학생들의 해외 유명 대학 진학이 서울대 진학보다 많았던 건 국내 대학에 대한 실망도 큰 몫을 했다. 오죽하면 비(非)운동권인 연세대 원주캠퍼스 총학생회가 ‘부실 교수 퇴출 운동’에 나섰겠나.

학과 평가로 경쟁력 보여야

대졸 백수와 백조 증가엔 급변하는 지식기반 노동 환경에 맞춰 탤런트를 키워 내지 못한 대학의 책임도 크다. 양적 팽창에 따라 질적 저하가 불가피했다면 뼈를 깎듯 정원을 줄이든지, ‘큰 대(大) 배울 학(學)’이란 명칭이라도 바꿔야 한다. 그래야 교육 소비자가 헛된 기대도, 헛된 낭비도 하지 않는다.

지금은 국민이 대학 편에 섰지만, 대학이 정부 규제와 ‘평등 지원’에 안주해 내 자식 내 나라 앞길을 망친다면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다. 국민이 정부의 밥이 아니듯 대학생도 대학의 밥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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