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법과 사회]‘헌법기관’ 대통령의 품격

  • 입력 2007년 7월 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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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전통적인 법과 가치질서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가족을 단위로 하는 법체계의 근본적인 재구성과 더불어 사회 경제적 지배구조가 흔들린다. 민주화 과정에서 국가기관에 대한 폄훼 현상은 권위의 위기를 넘어 권위의 실종으로 이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사 및 언론인과의 대화에 이어 6월 26일 전국 152개 대학 총장을 상대로 토론회를 열었다. 말이 대화나 토론이지 일방적인 교육과 홍보의 장이었다. 누가 감히 살아 있는 최고 권력자인 현직 대통령에게 따지고 들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대학 총장을 학문과 권위의 상징으로 예우했다. 그런데 대학의 수장이자 지성의 상징인 총장조차도 대통령의 교육 대상이 됐다.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는 데 권위주의적 잔재는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사회 각 직역에서는 권위와 위엄을 지키고 존중해야 한다. 막스 베버가 말한 카리스마적 지배를 뛰어넘는 합리적 지배가 권위의 실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국가원수의 권위는 어떤 경우에도 지켜야 한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유럽에서도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적 총리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고 다리를 꼬고 앉는다. 그만큼 국가원수에 대해 예우를 갖추고 권위를 존중한다.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는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정쟁의 한 축에 머물러 있다.

군주국가의 왕이든 공화국가의 대통령이든 간에 국가원수는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의 상징이다. 우리 헌법상 대통령은 집행권의 수장임과 동시에 국가를 대표한다. 더 나아가서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헌법 제66조)

헌법은 국가기관 중 유일하게 대통령의 취임선서문을 명시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제69조)

최근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의 언행이 공직선거법 제9조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대통령은 이 조항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 침해된 자’가 제기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법 제9조의 위헌 여부에 관해서는 헌법이론 및 입법 정책적 차원에서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다. 다만 국민의 기본권 수호를 엄숙히 선서한 대통령이 자연인으로서의 기본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대통령의 언행은 공적 영역뿐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도 언제나 품격을 지켜야 한다. 사적 영역에서도 대통령은 살아 있는 헌법기관으로 대우받는다. 대통령은 공인 중의 공인, 즉 최정상의 공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대통령의 언행은 잠자는 시간 외에는 모두 공인으로 작동한다. 공개된 장소에서 행한 대통령의 발언은 자연인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없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민주화의 상징이 아니고 집권층 내부에서조차 정치적 지분이 미약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에 심각한 도전을 받았다. 탄핵사태와 수도이전특별법 위헌 결정으로 권위에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또 스스로 자아내는 지나친 말의 홍수로 말씀의 품격을 잃었다. 이제 희화화된 대통령의 언행은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권위 실종을 자초한다.

차기 대통령선거로 나라가 벌써 들떠 있다. 다시 한번 품격 있는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스스로 언행을 조심하고 겸허하게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땅에 떨어진 권위를 회복하는 대통령이 그리운 시점이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 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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