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언론=非양심 집단’으로 모는 대통령의 탈선

  • 입력 2007년 5월 29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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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서 “언론이 기자실 개혁 문제와 관련해 세계 각국의 객관적 실태를 보도하지 않고, 진실을 회피하고 숨기는 비양심적 태도를 보인다”며 언론 보도를 비난했다. 그는 “많은 선진국은 별도의 송고실도 없다. 언론이 계속 터무니없는 특권을 주장한다면 정부도 원리원칙대로 할 용의가 있다”며 국정홍보처에 송고실 폐지 검토를 지시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국정홍보처에 기사송고실 폐지 검토를 지시한 사실을 숨기다가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뒤늦게 시인했다. 정부가 ‘선진화’라는 이름을 붙여 기자실 통폐합 조치를 발표하면서 ‘브리핑 내실화’를 약속했지만 대통령의 감정적인 발언을 듣건대 ‘선진화’ ‘내실화’와는 거리가 먼 것임이 드러났다. 어제 노 대통령의 발언 직후 참모들이 진실을 숨기려고 허둥지둥하는 것을 보면 대통령이 충분한 협의 없이 독단적인 생각을 밀어붙이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언론 취재 시스템 실태를 숨기는 ‘비양심적인 사람’이 과연 누구인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정부 부처마다 기자실이 있고 카운티(우리의 군에 해당)경찰서에도 브리핑룸 프레스룸 공보관이 있다는 보도가 거짓이라는 말인가. 일본은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마다 프레스룸을 두고 있는데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일본 취재 시스템이 가장 후진적”이라는 말로 사실을 호도했다.

정부가 KTV 같은 관제(官製)언론을 직접 휘하에 두고 ‘공무원 기자’가 제작하는 국정브리핑을 통해 언론을 공격하는 민주국가도 한국 말고는 없다. 국정홍보처를 두어 예산을 수백억 원씩 쓰고, 구성원의 80%가 반대하는 사람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런 것이야말로 ‘특권’을 넘어선 ‘월권’이요 후진적 ‘언론독재’다.

노 대통령은 “일부 정당과 정치인들이 언론의 잘못된 견해에 동조하거나 영합해 국가기관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릇된 언론관에 입각한 언론 괴롭히기는 ‘개혁’이고, 취재 보도의 자유를 옹호하는 태도는 ‘영합’이라고 하는 것도 독선이다.

정부를 감시하고 국민에게 올바른 정보를 알리기 위한 시스템을 특권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언론의 ABC도 모르고 하는 행태다. 노 대통령은 돌이킬 수 없는 반(反)민주의 길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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