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부형권]‘해명성 발표’가 진실의 전부인가

  • 입력 2007년 5월 21일 03시 05분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을 표방하는 KBS의 ‘미디어포커스’는 19일 ‘공장 이전 보도는 거의 오보?’라는 내용을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은 다른 신문의 기사와 함께 본보 기사도 비판했다.

미디어포커스가 ‘오보’라고 주장한 본보 기사는 ‘하이닉스, 이천공장 안 되면 옮겨 갈 수도’(2월 6일자 A1면 보도)와 ‘GM대우, 소형차 생산 공장 2010년께 중국 이전 추진’(2월 28일자 A1면 보도) 기사였다. 하지만 본보 기사에 대한 미디어포커스의 공격은 문제가 많았고 취재도 부실했다.

하이닉스반도체 건부터 보자.

연합뉴스는 2월 5일 오후 6시 56분 ‘하이닉스, 이천 안 되면 중국 간다’는 제목으로 하이닉스 임원들과 한나라당 의원들의 비공개 간담회 내용을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하이닉스의 한 임원이 ‘올해 말까지 이천공장 증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나온 뒤 본보 기자 4명은 간담회에 참석한 하이닉스 관계자와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밤늦게까지 전화를 걸어 확인 취재를 했다. 차명진, 정병국 의원은 “하이닉스의 한 임원이 ‘올해 말까지 이천공장 증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천을 떠나 중국으로 가는 방안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하이닉스 관계자도 의원들의 전언을 토대로 거듭 확인을 요청하자 그 발언 내용을 인정했다.

미디어포커스는 2월 6일 당시 우의제 하이닉스 사장이 중국 이전설을 부인한 점을 근거로 본보 기사를 ‘오보’라고 몰아붙였다. 하지만 퇴임을 앞두고 간담회에 참석하지도 않았던 우 사장이 갑자기 기자회견을 자청한 배경을 둘러싸고 소문이 무성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2월 11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우 사장이 2월 2일 ‘정부가 이천공장 증설을 계속 불허한다면 하이닉스 이천공장이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고 나에게 말했다”고 전했다. 김 지사는 우 사장의 ‘대외적 발언’에 대해 “한국 기업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GM대우 건은 또 어떨까.

본보는 2월 27일 제주에서 열린 신차 발표회에서 이 회사 임원 두 명에게서 관련 기사를 취재했다. 이들은 “한국은 자동차 생산 인건비가 중국의 10배에 이르고 땅값도 비싸 생산원가가 너무 많이 들어 소형차인 마티즈 생산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사안의 민감성과 기사의 신뢰성을 감안해 두 사람의 발언 내용을 모두 실명(實名)으로 보도했다.

기사가 나간 뒤 파장이 커지자 GM대우는 ‘해외 이전을 검토한 바 없다’는 해명자료를 냈다. 하지만 이 회사 고위 관계자는 본보 기자들에게 “기사가 틀리진 않지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부인할 수밖에 없으니 좀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들 기사는 취재된 사실(팩트) 그대로였다. 제목 역시 무리하지 않았다. 하이닉스와 GM대우가 본보에 이의를 제기한 적도 없다. 하지만 미디어포커스는 이런 취재과정에 대해 본보 기자들에게 단 한 번도 확인 전화를 하지 않았다. KBS의 담당기자는 2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확인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디어포커스는 끊임없이 방송의 공정성 논란을 불러온 프로그램의 하나다. ‘주류(主流) 신문 때리기’가 단골 메뉴라는 것도 이미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밤늦게까지 확인에 확인을 거친 기사를 일방적으로 공격하면서 자신들이 비판하는 대상의 설명조차 안 들을 만큼 기본적 취재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같은 기자로서 허탈하고 또 안타까웠다.

부형권 경제부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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