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성교수의 소비일기]소비자위한 반품제도 소비자가…

  • 입력 2007년 4월 25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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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캠코더가 처음 나왔을 무렵이지요. 동영상을 직접 촬영할 수 있는 캠코더는 시판되자마자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었지만, 워낙 비싸 살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입니다. 돌잔치를 하는 유학생 집에 초대됐는데, 주인 부부가 캠코더로 열심히 아이를 찍고 있었습니다. 다들 정말 부러워했지요. 그런데 몇 주 후에 하는 말이, 그 캠코더를 반환했다는 겁니다.

“어차피 매일 쓸 것도 아닌데 뭐 하러 가지고 있느냐?”며 하루 쓰고 반환한 결정을 매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미국 소비자는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반환하거나 환불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요즘은 미국의 상황도 많이 빡빡해졌지만….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결함이 있는 상품조차도 반환하려면 눈치가 보였으니 유학생들에게 미국은 그야말로 ‘소비자의 천국’이었지요.

그들의 무용담(?)을 들으며, 다들 ‘와, 그런 방법이 있었네! 진짜 똑똑하다! 탁월한 결정이다’라고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당시 우리들의 반응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한심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통신, 방문판매에서 ‘청약철회권’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판매원의 상술에 ‘홀려’ 충분한 검토 없이 상품을 산 소비자에게 다시 한 번 구매결정을 번복할 기회를 주는 중요한 제도입니다. 그동안 방문 판매원 등의 기만적인 상술 등으로 소비자 피해가 심각했었기에 이 분야에 우선적으로 도입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를 악용하는 소비자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저희들이 그랬듯이! 특히 홈쇼핑업계에 따르면 상습적으로 환불하는 소비자들의 명단이 ‘블랙리스트’로 작성될 정도랍니다. 경품을 받으려고 샀다가 경품에 당첨되지 않으면 그 즉시 구매를 취소해 버리는 소비자가 대부분이지요. 백화점에서도 같은 일이 흔히 벌어집니다.

‘청약철회권’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습니다. 그런데 이를 악용하는 소비자들이 있고, 이들로 인해 추가 비용이 생기는 것은 매우 우울한 일입니다. 이들의 환불, 반환에 따른 비용은 유통업체의 추가 부담이 아니라 결국엔 다른 소비자들에게 떠넘겨지는 몫이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들이 소비자에 의해 악용될 때, 소비자는 시장의 독립적인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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