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성 교수의 소비일기]소비자 우롱 여행사

  • 입력 2007년 4월 1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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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모처럼 해외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잘 아는 대리점을 통해 스케줄에 맞는 것을 예약했지요. 여행사의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니 최소 출발 인원은 13명인데 확인 당시 9명이 예약해 출발 못하는 불상사는 없을 것 같았지요. 또 확보된 비행기 좌석이 19명으로 인원도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출발하기 이틀 전 e메일로 계약서가 왔습니다. 어, 그런데 모두 39명이 함께 간다네요! ‘세상에 이건 무슨 수학여행팀도 아니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당장 여행사로 전화를 했습니다. 휴가 시즌이라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두 팀으로 나누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대리점에서는 본사의 결정이라 자기들도 어쩔 수 없다고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하더군요.

어찌나 화가 나던지 이런 식으로 소비자를 우롱하면 해약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원하면 그러라고 하면서, 하지만 여행비의 20%였던 계약금은 돌려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계약 위반인데 무슨 소리냐는 제 반박에는 “최소 인원은 정해져 있지만 최대 인원은 정해지지 않았다”며 오히려 큰소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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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제게는 두 가지 선택 방안이 있었습니다. ‘그냥 간다, 39명이 몰려다니며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불 보듯 훤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다녀온다!’ 아니면, ‘안 간다. 그리고 위약금은 절대로 못 내겠다고 싸운다. 한국소비자원에 피해 구제를 청구하자! 계약서에 최대 인원이 명시돼 있지 않아 피해보상을 받을 수 없다 해도, 최소한 이런 악덕 기업의 행동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

전날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가기로 했습니다. 아니, 안 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잡은 휴가인데…. 그리고 얼마나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언제 또 날을 잡아서 다녀오나….

정말 후회가 막급했습니다. 왜 처음에 인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을까, 어쩌자고 이토록 사람들이 몰릴 때를 택했을까, 떠날 때는 돌아와서 정식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생각이었는데, 그러나 돌아온 후엔 어디다 말 한 마디 안 했습니다. 그냥 그저 잊기로 했습니다. 다시 얼굴을 붉혀가며 싸우느라 모처럼 쌓은 좋은 추억을 잃기가 싫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술술 쉽게 넘어가는 나 같은 소비자들이 많은 한 소비자들의 정당한 권익을 침해받지 않는 세상은 기대하기 힘들 거라고….

여정성 서울대 생활과학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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