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FTA 가시밭길의 희망

  • 입력 2007년 4월 9일 19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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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대만을 다녀온 동료 저널리스트는 그곳 경제에 대해 “활력이 떨어졌더라. 비즈니스는 중국으로 대거 이동하고…”라며 천수이볜(陳水扁) 정권 책임론을 폈다. 천 총통은 2000년 집권 이후 경제보다 독립을 외치며 대만민족주의를 자극하고, 과거사(史) 헤집기와 장제스(蔣介石·1887∼1975) 전 총통 격하에 열을 내왔다. 나의 동료는 천 총통과 노무현 대통령을 닮은꼴로 봤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임기가 1년도 안 남은 시점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주도해 일거에 ‘천 총통 동렬’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대만은 중국 때문에 미국에 단교(斷交)당한 반면, 한국은 미국과 FTA를 맺을 수 있는 관계라는 사실은 노 정권 차원을 넘어 국가적 행운이다. 군사동맹이 이완돼 왔기 때문에 FTA의 의미는 더욱 크다.

FTA 개방 파고(波高)가 농업, 지식서비스산업 등 경쟁력이 약한 부문을 쓸어 버릴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개방은 죽음이라는 절규까지 나온다. 그러나 아니다. 농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농가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개방보다는 수십조 원을 잘못 쓴 ‘위선적 보호’ 탓이 크다. 세계적 경쟁에 일찌감치 내던져진 산업일수록 국민이 먹고살 것을 더 많이 만드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경제 질병 고칠 好機 잡았다

‘근대 세계경제의 역사를 보면 세계에 대해 개방했을 때 경제는 가장 잘 나간다.’ 지난해 미국 하버드대 제프리 프리든 교수가 쓴 ‘글로벌 캐피털리즘’의 제1 결론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남북한이 답이다.

북한과 달리 인도는 반전(反轉)에 크게 성공한 경우다. 인도의 경제 수준은 1950년대까지 한국과 비슷했다. 그런데 1947년 독립 후 종주국이던 영국과 거꾸로 가는 사회주의, 내수중심 산업화를 선택했다. 당시 포퓰리즘 정치의 결과였다. 반면 우리는 자본주의, 수출주도형 산업화를 꾀해 1973년 1인당 국민소득이 인도의 3배가 됐다.

인도는 경제위기에 몰린 1991년 과감한 개방으로 선회했다. 그때의 주역이던 맘모한 싱 재무장관이 지금 총리다. 금세기 들어 인도는 중국과 함께 무서운 신흥 경제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개방으로 세계 경제 판도를 가장 크게 바꾼 나라는 말할 것도 없이 중국이다.

우리나라도 멕시코처럼 수입 대체 산업에만 매달렸더라면 5대 자동차생산국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프레드 미시킨 교수는 지난해에 쓴 ‘넥스트 글로벌리제이션’의 첫머리에 한국을 올려놓았다. ‘1960년만 해도 아프리카보다 가난했던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된 핵심 요인은 국제교역의 성공이다. 세계시장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세계화 덕분이다.’

효과적인 성장전략 덕분에 우리나라는 1960∼97년 연평균 8%의 고도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던 것이 2000∼2006년엔 연평균 4% 미만의 ‘반 토막’ 성장으로 주저앉았다. 아시아개발은행은 한국이 과거의 성장세를 회복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교육 부실, 이로 인한 휴먼캐피털(인적 자본)의 생산성 저하, 법치 미흡, 질 나쁜 규제, 정치적 불안정’ 등을 꼽았다. 이런 요인들이 국내외 투자자들을 안심시키지 못해 투자가 잘 안 되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安着은 차기 정권까지 최대 과제

한미 FTA는 우리경제의 이런 교착상태를 타개할 ‘선의(善意)의 충격파’다. 물론 ‘한미 FTA가 무슨 만병통치약이냐, 우리가 잃을 것도 많다’는 지적도 맞지만 잃는 것 없이 얻기만 하는, 그런 공짜는 꿈꾸면 안 된다.

한미 FTA는 우리에게 재도약의 발판이자 국가적 안전판이 될 수 있다. 동북아 변방의 외톨이, 중국과 일본 사이의 ‘샌드위치’로 내몰리던 우리가 21세기 들어 손에 쥔 결정적인 선진화 티켓이다. 한미 군사동맹+FTA는 북-미, 북-중, 미일, 중-일 등 여러 관계의 변전(變轉)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절묘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이런 큰 가능성에 대한 국민적 컨센서스 위에서 잃는 것을 최소화할, 아니 잃으면서 더 얻을 방책을 주도면밀하게 찾아나가는 것이 4800만의 과제다. 현 정권에서 시작한 한미 FTA는 차기 정권까지 안착에 성공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대한민국호의 미래를 가늠하기 어렵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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