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7년 2월 28일 19시 16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딱딱한 헌법을 다룬 책을 어떻게 만들었기에 일반 시민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그때부터 나도 언젠가 ‘재미있는 대한민국 헌법’을 써보고 싶다는 꿈을 지금까지 간직해 왔다. 하지만 의욕만으로는 되지 않았다. 헌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못한 사람에게 그 작업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직까지 기초자료 수집조차 못한 것은 게으름 탓만은 아니다.
어쨌든 국내에서도 이런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목받는 헌법학자로 ‘전 국민 헌법 읽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정종섭 서울대 교수 같은 이가 대표적이다. ‘대한민국 헌법을 읽자’는 책을 쓴 데 이어 최근엔 아주 독특한 ‘대한민국 헌법’을 출판했다. 정사각형의 화려한 장정(裝幀)에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형형색색의 예쁜 꽃잎 사진을 곁들여 볼 수 있게 편집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가게 하려는 배려인 것 같다.
텍스트는 한글 헌법 조문과 영역(英譯)한 조문, 용어 설명으로 돼 있다. 하지만 재미있게 읽히기에는 아직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학계와 법조계, 권력세계에서나 관심 가질 만한 헌법을 일반 국민도 가까이 할 수 있게 ‘생활 헌법’으로 꾸며 보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지난주 한국사회과학협의회(회장 원우현 고려대 교수)와 한국행정연구원(원장 정용덕 서울대 교수)이 공동 주최한 ‘헌법과 행정’이란 주제의 세미나에서도 이런 문제 제기가 있었다. 헌법(책)이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 책꽂이에 꽂혀 있어서는 안 되며, 항상 책상 위에 놓고 읽는 ‘사랑받는 최고법’이 돼야 한다는 데 모두가 공감했다. 표시열 고려대 교수는 “일반 국민에겐 생활 헌법이 돼야 하고, 공무원에겐 행정지침서 역할을 해야 한다”며 헌법의 생활화 캠페인을 주창했다.
누구나 헌법 조문을 제1조부터 달달 외워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헌법의 기본 정신과 가치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국민이 진정한 나라의 주인으로 대우받고 공무원이 공복(公僕)으로서 헌법에 맞는 올바른 행정을 펴는 데 필요한 일이다. 헌법 정신은 모른 채 개개의 하위법(下位法)에만 눈을 맞춰 행정을 하면 위헌 사례를 만들기 쉽다.
가령 사형제도, 인간복제, 낙태, 안락사 등의 이슈를 다룰 때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는 헌법적 가치를 염두에 둬야 한다. 부동산 대책은 공공성보다 자유시장경제와 개인의 재산권 보장 정신을 존중해야 한다. 고교평준화 정책은 기계적 평등이 아닌 ‘능력에 따른 기회균등’의 정신을 일탈해선 안 된다. 정부 스스로 헌법 정신과 가치를 얼마나 파괴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1988년 헌법재판소 발족 이후 일반 국민의 헌법에 대한 인식은 급성장했다. 특히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과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여부 심판 등이 중요한 계기였다. 그러나 ‘재미있는 헌법’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멀다. 초등학교 때부터 헌법을 쉽게 배울 수 있는 교재와 성인용 책 출판에 더 많은 헌법학자가 앞장섰으면 싶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