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관]‘진보 野黨’ 하겠다고?

  • 입력 2007년 2월 21일 19시 40분


“2007년 대선에 목표를 두지 말고 2012년을 준비하시죠.”

노무현 대통령의 한 핵심 측근이 최근 청와대를 방문해 노 대통령에게 한 조언이다.

때마침 20일 노 대통령의 ‘심기(心氣) 경호대장’을 자처해 온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은 99%이며 열린우리당은 없어질 것”이라고 말해 여권이 발칵 뒤집혔다. 야당에서는 ‘야당 분열을 노린 고도의 외곽 때리기’라는 의구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패배주의적 사고’라며 “출당 조치해야 한다”는 격앙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정작 유 장관의 발언의 함의(含意)는 이어지는 다음 말에 들어 있다.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이후 나치 정권의 ‘쇼비니즘’(배타적 애국주의)이 반동(反動)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 이 말은 유 장관이 얼마 전에 한 “10년 집권하면 많이 했다. 야당하면 어떠냐”는 말과 오버랩 된다.

그의 말은 노 대통령의 최근 발언과 대조해야 더 정확한 그림이 나온다. 노 대통령은 ‘반(反)한나라당 전선 구축’을 목표로 한 통합신당 논의에 대해 줄곧 ‘도로 민주당’ ‘지역주의로의 회귀’라고 노골적으로 비판해 왔다. 그러면서 정작 북한의 핵실험 직후에는 동교동으로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방문해 ‘한 수’ 배우려는 자세를 보였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당시 지지율이 떨어지자 호남(湖南)표 구애 차원에서 동교동을 방문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했지만 실제 두 사람의 연결고리는 바로 ‘햇볕정책’”이라고 전했다. ‘햇볕정책’을 자신의 업적으로 남기고 싶은 DJ와 “진보 브랜드로 승부해야 대선에서 패배하더라도 미래가 있다”는 노 대통령의 계산이 맞아 떨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구상은 ‘퇴임 후 정치’도 염두에 둔 것 같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이 최근 ‘교조적 진보’를 비판한 데 대해 일각에서 “진보세력은 뭉쳐 있어야 한다는 호소”라는 해석이 나온 것도 이런 맥락이다.

실제로 현 정권은 ‘무능한 얼치기 386 정권’으로 낙인찍혔지만 지난 10년간 뿌리내린 진보좌파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한 여론조사에서도 자신의 이념성향을 진보로 자리매김한 사람은 50.5%, 보수는 43.6%였다. 차기 대통령이 가져야 할 이념 성향은 진보 63.8%, 보수 29.1%로 격차가 더 크다. 진보좌파는 학계와 예술계 방송 등 문화권력을 장악하고 있고, 민주노총과 전교조 등도 든든한 보루다. 북핵 문제의 해결에 숨통이 트여 북-미관계가 진전되고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 경제에 집중된 어젠다가 언제든 안보로 바뀔 수 있다.

설사 보수 세력이 집권한다 해도 사회 전반에 확산된 포퓰리즘, 극렬 야당 및 노조 시민단체와의 대치 등은 만만치 않은 과제다. 다음 정권에서도 뭐 하나 되는 일이 없이 ‘꽝’이라는 전망은 그래서 나온다. 문제는 보수 세력이 과연 제대로 준비가 돼 있느냐다. 한나라당만 해도 ‘99%의 가능성’에 취해 검증 공방으로 자해(自害)행위나 벌이고 있다. 그러는 동안 맞은편에선 벌써 10년 뒤의 그림을 다시 그리고 있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