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7년 2월 16일 03시 00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거짓 진술을 강요한 검사의 수사 과정을 녹취한 피의자가 전한 검사의 말이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인척 가운데 한 명이라도 형사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일이 있는 사람은 이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을 것 같다.
검찰 조사와 재판 절차가 진행되면 담당 검사나 판사가 어느 대학 무슨 과를 나왔는지, 사법연수원 몇 기인지, 선임할 변호사가 ‘전관예우’를 받을 수 있는지 등등 복잡한 인맥, 학맥 찾기가 시작된다.
검찰과 법정을 오갔던 한 국회의원은 “막상 내가 피의자가 되고 보니 국회의원이고 뭐고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인맥, 학맥에 줄 대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정도니 일반 시민들이야…”라고 토로했다. 법조의 문턱이 과거보다 낮아졌다고는 하나 그 인맥과 학맥의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없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높고 두려운 ‘그들만의 리그’인 게 사실이다.
명문대를 졸업한 A 씨. 아들이 외국어고에 들어갔을 때 자신이 대학에 합격했을 때보다 더 감격한 그는 명문대를 졸업한 아들이 백수로 지내자 청년 실업자 대열에 끼는 게 아닌가 노심초사했다. 그런 아들이 어렵게 취직한 대기업의 오너가 온갖 기기묘묘한 수법을 동원해 변칙 상속을 했다는 뉴스를 아들과 함께 보면서 왠지 눈치를 살피게 됐다고 한다. “대학교육 해 줬으니 물려줄 건 없다”고 큰소리쳐 온 자신이 어쩐지 초라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이런 허탈감, 어떻게 해도 ‘그들만의 리그’에 들어갈 수 없다는 좌절감의 틈새를 타고 연탄가스처럼 스며드는 게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유혹이다. 우리 사회를 ‘특권과 기득권, 반칙으로 세상을 주무르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로 규정하고, 이를 ‘끝내겠다’고 한 노무현 후보의 호소는 그래서 먹혔다. 그 결과가 임기 말인 현재 ‘포퓰리즘 정권’이라는 평가가 굳어진 참여정부의 탄생이었다.
지난해 본보 창간특집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4명 중 1명, 초중고교생 학부모 3명 중 1명이 ‘기회가 된다면 교육이민을 가겠다’고 했다. 교육에 대한 이런 상대적 박탈감이 상존하는 한 본고사와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3불정책 같은 포퓰리즘 정책이 자랄 토양은 충분하다.
국민들은 지난 4년의 포퓰리즘 정책과 정부, 지도자들에게 신물이 났지만 그렇다고 과거로의 회귀를 바랄 만큼 바보가 아니다. 분배보다 성장을 원한다 해도 이젠 ‘깨끗한 성장’을 원한다. 보수·기득권 세력도 ‘그들만의 리그’를 깨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탈바꿈할 때가 됐다. 그래야 포퓰리스트들이 비빌 언덕을 없애고 기득권을 지킬 수 있다. 그것이 지난 4년의 교훈이다.
파리 특파원 시절 프랑스의 한 ‘샤토(성)’ 주인을 만난 일이 있다. 대대로 귀족이었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유럽의 귀족이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참전하고, 흉년이 들면 곡식 창고를 연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알다시피 유럽에는 혁명과 전란이 많았다. 그렇게 해놓지 않으면 수많은 혁명과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샤토가 쑥대밭이 됐을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가문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박제균 정치부 차장 phark@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