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구]밑그림 없는 ‘비전 2030’

  • 입력 2007년 2월 7일 02시 56분


정부는 지난해 8월 30일 ‘비전 2030-함께 가는 희망한국’이란 중장기 보고서를 발표했다. 2030년까지 세계 10대 일류 국가를 건설한다는 장기 플랜이다.

이에 대해 ‘재원 마련 방안 등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기획예산처는 “장기에 걸쳐 광범위한 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구체성이나 실천성이 충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공론의 장에 넘겨져 보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5일 ‘2030’ 시리즈 2탄인 ‘비전 2030 인적자원 활용 2년 빨리, 5년 더 일하는 사회 만들기 전략’을 발표했다. 이번에도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전체적인 그림을 봐 주는 것이 필요하다. 군복무 기간 단축 외의 나머지 부분은 추후 구체화하겠다”고 답변했다.

정부가 10년, 20년 후를 내다보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세우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들 ‘2030’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정부가 ‘대작(大作)’에만 집착한 나머지 현실과 실현 가능성을 소홀히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려웠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계획들은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군 복무기간 단축’을 제외하면 대부분 국회에서의 법 제정이나 개정이 필요한 사안들이다. 특히 군 복무기간 단축과 맞물린 ‘사회복무제’와 ‘유급지원병제’는 올 상반기 구체안을 마련하더라도 국회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분당 사태에 휘말려 정부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30’ 계획이 너무 막연해 여론의 지지를 얻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도 임기 1년 남은 참여정부는 구체적 재원 마련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다음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을 ‘가불 정책’으로 내놓고 20여 년 후를 겨냥한 청사진을 마련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방안은 추후 구체화하겠다”는 정부의 군색한 해명은 설계도도 없이 마천루를 짓겠다는 무모한 발상이나 마찬가지다. 현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가불 정책’ 양산이 아니라 산적한 민생 현안 등 국정 전반을 치밀하게 운영하는 것이다.

이진구 정치부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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