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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1월 21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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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생들은 새로운 문제가 주어졌을 때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바로 포기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학 신입생의 학력이 저하되었다는 말은 기본지식이 부족하며 문제를 탐구하고 기초지식을 활용하는 문제해결 능력이 저하됐음을 의미한다. 학력 저하 보도를 접할 때마다 의문이 있었다. “과거에 비해 사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공부 시간이 늘었다는데 왜 학생의 실력은 점점 더 떨어지는 것일까?”
필자가 아는 어떤 학생은 중학교 때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 왔다. 처음에는 학원을 다니며 공부해 중상위 수준을 유지했다. 학원을 그만두고 혼자 공부한 지 몇 달 후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좀처럼 석차가 오르지 않아 안타까워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서울 강남지역 고등학교에 다니며 사교육을 받은 후배는 “공부한 적이 없는 가정 과목을 지금 시험 본다 해도 90점 이상 받을 수 있다”며 (객관식) 문제풀이 전문가라고 호언했다.
사교육을 통해 문제풀이 기술(?)을 터득한 학생들이 한 학교에 밀집돼 있다면 이런 집단에서는 몇 점 차이로 석차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 반면 스스로 공부해 성적을 향상시키기가 거의 불가능한 ‘사교육 장벽 효과’가 나타난다. 이런 집단에서는 우수한 학생조차 석차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므로 더욱 사교육에 의존한다.
문제풀이 방법만 집중적으로 훈련한 학생은 일시적으로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창의적인 문제풀이 능력이 배양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문제풀이 기술은 스스로 공부하는 고통을 감수하려는 의지를 떨어뜨리므로 차후 학생의 재능이 발전할 가능성을 봉쇄한다.
최우수 고등학생이라도 대학 공부에 필요한 탐구력 및 창의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학력이 저하됐다고 말한다. 학생의 경쟁력 향상에 필요한 점은 문제풀이 기술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하는 고통을 통해 배양된 ‘자연산’ 문제해결 능력이다.
한 학교의 바람직한 성적 분포는 성적이 낮은 학생과 높은 학생 수는 적고 중간 수준의 학생 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완만한 종(鐘) 모양이다. 학생 개인은 공부를 게을리 하면 완만한 속도로 성적이 떨어지지만 학생 스스로 공부해 상위권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건전한 집단이라 할 수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04년 한국의 사교육 시장규모는 14조 원에 이르고 가계 지출의 25% 정도가 사교육에 쓰인다고 한다. 국내총생산의 1.7% 정도 되는 막대한 비용이 오히려 학생의 학력을 저하시켜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니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공교육의 역할을 찾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서윤호 고려대 교수 정보경영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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