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김기현]한국서 보는 옛 소련의 그림자럼

  • 입력 2006년 7월 2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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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모스크바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13년 만의 귀국이다.

되살아난 청계천이나 광화문 일대의 풍경보다 ‘붉은 광장’의 모습이 더 익숙했던 시간이었다. 유학생으로, 동아일보 특파원으로 모스크바에 머무르면서 1990년대 초부터 러시아가 겪은 숱한 대변혁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하지만 귀국이 결정된 날부터 벌써 마음은 시베리아 너머 한국으로 날고 있었다. 2002 한일 월드컵도, 초유의 외환위기 사태도, 세 차례의 대통령 선거도 먼 땅에서 국외자처럼 지켜봐야 했다. 그동안 모스크바 못지않게 엄청난 변화를 겪었을 서울의 모습을 혼자 그려 보곤 했다.

취재를 위해 옛 소련과 동유럽 곳곳을 다녔다. 어디를 가나 고국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새 출발을 한 그들에게 한국은 식민지배와 전쟁을 극복하고 짧은 기간에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함께 이룬 놀라움과 부러움의 대상이며 발전 모델이다.

그런데 가끔 한국 소식을 듣다 보면 엉뚱하게도 옛 소련과 혼란기의 러시아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떠올라 당황스러울 때가 있었다.

공식 행정기구를 제치고 이름도 외우기 힘든 수많은 위원회가 날마다 생겨나는 ‘위원회 공화국’. 정부가 모든 문제에 사사건건 끼어들어 국가의 개입은 과도해지고, 일자리를 만든다며 공공부문을 확대하고 공무원을 늘려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나라…. 처음에는 옛 소련의 얘기인 줄 알았다.

소련이 권위주의 체제였기 때문에 최소한 국가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효율성만큼은 갖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수많은 위원회는 그렇지 않아도 관료적으로 운영되던 절차만 더 복잡하게 만들었고 회의와 보고, 각종 계획 등 ‘말’만 요란했다.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일선 실무자들이 해야 할 일까지 직접 결정했고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조직을 늘렸다.

‘모든 국민이 공무원’이나 마찬가지였던 옛 소련에서는 매일 출근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한 사람이 할 일을 몇 사람이 나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업 하나로는 생계를 꾸리기 어려워 사람들은 부업을 찾아다녔다.

2003년 한국 정당에서는 기간당원(진성당원)제 논란이 일었다. 당비 납부 등 정당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기간당원에게 대의원과 각종 공직선거 후보자를 뽑는 권한을 주자는 것.

100여 년 전 소련공산당의 전신인 사회민주노동당의 볼셰비키(다수파)와 멘셰비키(소수파)가 당 주도권을 둘러싸고 벌인 논쟁을 연상시켰다. 당시 볼셰비키는 ‘열성자’들이 당 조직을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멘셰비키는 “열성 당원이 아니더라도 당의 노선에 공감하는 지지자가 당 조직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맞섰다. 논쟁은 볼셰비키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이런 논쟁도 벌써 러시아에서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먼 옛날 얘기다. 러시아가 옛 체제와 낡은 이념의 잔재를 청산하는 동안 한국에서는 ‘소련 따라하기’ 바람이 불었던 것일까. 그동안 활력을 잃은 ‘한국호(號)’의 성장엔진이 꺼져 가고 있다는 안타까운 우려의 소리도 들려왔다.

끝없는 정체에 빠져 있던 소련은 어느덧 급속한 경제성장에 힘입어 강대국의 위상 회복을 노리는 새로운 러시아로 변해 가고 있다. 10년 후 변모한 러시아를 다시 보고 싶다는 기대를 가슴에 품고 귀국길에 오른다.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10년이 더는 대한민국에 ‘잃어버린 시간’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김기현 모스크바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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