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승호]경제학자 맞습니까?

  • 입력 2006년 7월 9일 22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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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화(寓話)가 있다.

‘홀로나라’ 정부는 경제학자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철강의 수입을 금지했다. 자국 철강업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어느 날 한 과학자가 강철을 값싸게 만들 수 있는 기계를 발명했다. 철광석이나 용광로는 필요 없고 홀로나라에 풍부한 바나나만 투입하면 되는 기계였다. 이 발명은 물가를 낮추고 국민 생활수준을 향상시켰다. 하지만 몇 년 뒤, 신비한 제련법은 사기(詐欺)임을 한 신문기자가 밝혀냈다. 발명가는 강철을 생산하지 않았다. 바나나를 몰래 수출해 강철을 밀수입할 뿐이었다. 진실이 공개되자 정부는 과학자를 투옥하고 가짜 ‘생산시설’을 폐쇄했다. 다시 철강 값은 오르고 국민 생활수준은 예전처럼 떨어졌다. 그는 발명가가 아니라 경제학자였다.

이는 데이비드 프리드먼이 지은 우화로 각 경제학 교과서의 ‘무역’ 편에 실려 있다. 사실 교역확대에 대한 경제학자의 지지는 정부나 일반 대중의 태도보다 훨씬 완강하다. 이들은 상대국의 태도와 관계없이 자유무역을 옹호한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클로드 바스티아는 이렇게 요약했다. “상대가 자유무역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도 보호주의 하겠다고 말하지 말라. 이는 상대국이 암벽해안이기 때문에 우리도 멀쩡한 항구를 바위로 막아야 한다는 말과 같다.”

물론 무역·투자의 자유화에는 창조적 파괴의 고통이 따른다. 교역확대는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늘리지만 장기적 효과만 기다릴 수 없는 사람도 적지 않다. 농산물시장이 열리면 농민들은 농협대출금을 ‘단기적으로’ 갚아야 한다. 어떤 산업의 일자리는 ‘금방’ 없어진다. 장기적으로 봐도 농민들은 득볼 것이 없다. 실직 노동자들도 숙련도가 높지 않아 재취업이 어렵다. 이 때문에 사회안전망 보완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가장 좋은 안전망은 성장을 통한 안전망임을 각국이 경험을 통해 거듭 확인하고 있지만….

자유무역은 실직 문제 말고도 유치(幼稚)산업을 위협하고 불공정 경쟁을 부채질하며 나아가 국가안보에 해를 끼친다는 등의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얘기는 대부분 특정산업의 이익을 대변할 뿐이라는 것이 많은 경제학자의 의혹에 찬 시선이다.

10∼14일 서울에서 열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협상을 앞두고 FTA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거세다. 노동자 농민단체가 반대하는 것은 그렇다 치자. 그러나 경제학자 170여 명이 협상중단 촉구 성명을 낸 것은 생뚱맞다. 여기엔 이정우 전 대통령정책실장 등 전현직 정부 인사들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성명엔 논리 비약이나 비실증적인 대목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성명은 FTA로 인한 소비자 후생의 혜택은 일부 상류층이 독차지할 뿐 다수 대중은 배제될 것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주장을 펴고 있다. 성명은 또 멕시코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후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비판했지만 멕시코는 협정 후 지니계수가 낮아지는 등 빈부격차가 완화되고 있다. 원론(原論)과 다른 얘기를 하려고 사실까지 왜곡하는 모양새다.

폴 크루그먼은 저서 ‘경제학의 향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교우위의 원리를 안다, 자유무역을 지지한다’는 것은 경제학자의 직업적 동일성을 확인하는 증표 같은 것”이라고.

크루그먼 식으로 묻고 싶다. “당신들, 경제학자 맞습니까?”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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