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꾸자, 가족문화]<4·끝>우리 가족 아름다운 가치 찾기 공모전

  • 입력 2006년 5월 2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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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아름다운 가치 찾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태문희 씨(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와 태씨 남편(뒷줄 오른쪽). 이들 가족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서로 믿어주며 배려하는 것이 15명의 대가족이 살아가는 비결이라고. 공부 때문에 조카들 세 명은 함께하지 못했다. 박영대 기자
‘우리 가족 아름다운 가치 찾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태문희 씨(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와 태씨 남편(뒷줄 오른쪽). 이들 가족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서로 믿어주며 배려하는 것이 15명의 대가족이 살아가는 비결이라고. 공부 때문에 조카들 세 명은 함께하지 못했다. 박영대 기자
《한울림출판사가 동아일보 후원으로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개최한 ‘우리 가족 아름다운 가치 찾기 공모전’ 당첨가족이 발표됐다. ‘아름다운 가치사전’(한울림어린이)의 감사 겸손 성실 등 다양한 가족가치를 근거로 우리 가족만의 가족 가치를 찾아보고자 열린 이번 행사에는 67가족이 선정됐다.

대상에는 15명의 대가족이 함께 살며 가족의 사랑과 화목을 실천하고 있는 모습을 잘 드러낸 태문희(34·서울 은평구 갈현동) 씨 가족이 뽑혔다. 대상가족에는 특별회원권(한울림어린이 전 도서 5년간 무료 증정)이 부상으로 주어진다. 한울림출판사는 이들 67가족 응모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우리 가족 아름다운 가치-가제)으로 제작할 예정이다.》

우리 집은 일요일 점심만 되면 대형 밥솥 두 개에 밥을 짓습니다. 국은 커다란 곰솥에 끓이죠. 손님 초대, 혹은 잔치냐고요? 아닙니다. 저희 식구 15명용 ‘보통’ 점심입니다. 우리 가족이 점심식사를 하는 모습을 처음 본 사람들은 규모에 입이 딱 벌어집니다.

“니, 그 남자 억수로 사랑하나부데이.”

부산에서 태어난 저 태문희(34)가 친구 소개로 남편(양승종·35)을 만나 대가족이 모여 사는 집에 시집간다고 했을 때 고향 친구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며’ 한 말입니다

요즘 세상엔 결혼하면 오붓하게 둘이 살고 싶어 시부모도 모시기 싫어들 하는데, 시고모에 오촌조카들까지 줄줄…. 남들은 듣기만 해도 아찔한 상황일 겁니다. 게다가 제가 결혼할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많아 20명 ‘대부대’였으니 친구들이 놀랄 만하죠.

지금은 식구가 줄어 시고모(69)와 시어머니(59), 아주버니(40·공장 경영), 큰동서(37) 부부와 중3 조카(남), 둘째 시누이(37) 부부와 네살 조카(남), 우리 부부와 딸 아림(초교 1), 미혼인 시누이(30), 그리고 지방에서 유학 와서 3년째 함께 사는 조카들(중1, 3학년과 대학생)까지 모두 15명입니다.

○ 열다섯 가족이 함께 사는 즐거움

우리 가족은 우리 부부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서울 은평구 갈현동 자그마한 산자락의 3층짜리 다가구주택 2, 3층에 함께 모여 살고 있습니다. 15명이 매일 식사를 하면 좋겠지만 여자들이 너무 힘드니까 평소에는 2, 3층의 5가구가 각각 해결하고 일요일 점심만큼은 항상 같이합니다.

많은 가족이 함께 살다 보니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입덧이 심할 때는 어른들 눈치가 보여 남편을 두고 친정에 가 있기도 했습니다.

대가족이다 보니 경제적인 분담 부분이 불명확해서 며느리 입장에서 불만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어쩌다 치킨이 ‘땡기는’ 날에도 튀김 냄새가 진동하는 치킨을 한 마리만 살 수도 없고, 네댓 마리를 사자니 지갑이 뒷받침되지 못해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좋은 일은 훨씬 많습니다. 아이들 웃음이 끊일 날 없고 다정다감한 할머니 아래로 아이들은 예의와 사랑을 배우며 커갑니다.

시고모님도 모시고 영화도 보러 가고 경기 인근으로 나들이도 자주 다닙니다. 아무리 가족이 많아도 제 방에 들어앉아 있으면 가족이란 기분도 덜 들고 정도 덜 쌓입니다. 멀리 못 갈 때는 주말에 뒷산에라도 함께 오릅니다.

부부싸움을 할 때에 곁에서 말려주는 분들이 많아 오래 화내고 토라질 수가 없습니다.

○ 열다섯 가족 ‘사랑의 힘’

우리 가족이 함께 다니면 많다고들 사람들은 놀라지만 저는 ‘가족’ 하면 왠지 푸근하고 따뜻한 느낌이 감돕니다.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함께하는 게 가족이니까.

시어머님이 당뇨로 고생하셔서 요새 우리 가족은 모두 시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잡곡밥 야채 저염식 식사를 합니다. 어쩌다 이웃에서 놀러와 우리 집에서 밥을 먹게 되면 대체 무슨 맛으로 먹느냐고 하지만 어머니만 당뇨식을 드시게 할 수 없어 모두 다 당뇨식단으로 식사를 합니다.

가족이 많다 보니 영화 ‘나홀로 집에’ 같은 사건도 생깁니다. 4년 전 부산에 사는 큰시누이 가족까지 모두 19명이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며 비행기 안에서 ‘점호’를 할 때였습니다.

식구 수가 많다 보니 우리 가족만 앉아도 몇 줄인데 하나 둘 세다 보니, 맙소사, 한 명이 모자랐습니다. 시누이네 어린 조카가 없었습니다. 승무원에게 알려서 다른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어른들이 모두 아이를 찾기 위해 비행기 밖으로 달렸죠. 공항에서는 다급하게 안내방송 나오고, 우리 가족들은 여기저기 아이 찾아다니고…. 결국 유아휴게실에서 천연덕스럽게 놀고 있던 조카를 찾아내면서 영화 같은 상황은 끝났습니다. 그날 비행기는 10분 늦게 떴습니다.

이렇게 고난과 행복을 같이하며 살아온 막내조카서부터 시고모님까지 우리 열다섯 가족의 아름다운 가치사전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얻어진 가치들을 적으며 느꼈습니다. 서로의 생각과 가치를 함께 알아가는 것이 가족이구나 하고….

박경아 사외기자 kapark0508@hotmail.com

태문희 씨 가족이 말하는 아름다운 가치사전

1. 첫 번째 가치-나눔

△시어머니:이웃 독거노인과 정성껏 담근 김치와 따뜻한 밥 한 끼 나눠 먹는 것. 음식을 나누는 것이 아닌 내 마음을 나누는 것이니까.

△양아림(딸):맛있는 케이크, 내가 다 먹고 싶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는 오빠들을 위해 절반을 남겨두는 것.

△태문희:대가족 아침밥을 위해 쌀을 씻을 때마다 쌀 한 그릇을 ‘사랑독’에 넣는 것. 그 사랑독은 한 달에 한번 동사무소 사랑의 쌀독으로 옮겨 담아진다.

2. 두 번째 가치-희망

△양승창(아주버니):오늘 공장 주문이 밀려 고되고 힘든 밤을 보내겠지만 말일이면 결제가 이뤄지고 그것으로 아들 생일에 작은 책상을 사주는 것.

△양인숙(막내시누이):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자료준비로 동분서주하지만 합격만 되면 일본어 전문 국제통역사로서 누구보다 자신 있게 살 것.

3. 세 번째 가치-공평

△시고모:며느리가 솜이불을 뜯어서 햇볕에 말려주면 내가 직접 꿰매 덮는 것. 나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도움이 되고 싶다.

△양승종(남편):어린이날 딸아이와 조카들 모두에게 똑같은 선물을 나눠주는 것.

△양정현(큰집 조카):급식 때 친구가 나를 위해 국 당번을 해주면 다음번에는 나도 그 친구 대신 국 당번을 해주는 것.

4. 네 번째 가치-배려

△배은하(대학생 조카):지하철에서 임산부나 할머니께 자리를 양보하는 것. 에스컬레이터에서 바쁜 사람들을 위해 왼쪽 자리를 내어주는 것.

△이영숙(큰동서):동서의 아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바쁜 동서를 위해 다른 조카들을 돌봐주는 것.

5. 다섯 번째 가치-우정

△금다현(시누이네조카):어린이집까지 친구와 함께 손잡고 가는 것. 친구가 좋아하는 반찬을 나눠 먹고 맛있는 사탕도 함께 먹는 것.

△배은하:혼자 자취하는 친구가 아플 때 약을 사서 찾아가는 것.

△양승종: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사이. 항상 마음속으로 누구보다 먼저 그를 생각하는 것.

6. 여섯 번째 가치-믿음

△양승창:거래처에서 결제대금을 5시까지 입금한다고 했을 때 기다리는 마음.

△양정현:친구가 약속시간에 한 시간이 늦었지만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기다리는 것.

△태문희:아이가 내게 처음 거짓말을 했지만 다신 거짓말을 안 하리라 생각하는 마음.

7. 일곱 번째 가치- 사랑

△할머니:온 가족이 건강하고 화목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태문희:내 아이가 아플 때 마치 내 몸 아픈 것처럼 고통스럽고 내 아이가 활짝 웃을 때 하늘을 날 듯 기분 좋은 것. 몸 힘들 때 남편이 따뜻한 물로 내 발을 씻어주는 것.

△양아림:엄마와 아빠가 나를 가운데 두고 양 볼에 뽀뽀해주는 것. 아침마다 할머니가 나를 힘껏 안아주는 것.

8. 여덟 번째 가치-인내

△배은하:산을 오를 때 턱까지 오르는 숨가쁨을 참아내는 것.

△양승종:마라톤에서 마지막 관문까지 참아 견디는 것. 그리고 그 기쁨을 만끽하는 것. 영업을 할 때 남보다 낮추고 더더욱 겸손해야 하는 것.

△양아림:주사는 아프지만 참고 맞아야 건강하게 된다는 것.

9. 아홉 번째 가치-대화

△할머니:아이들 말에 귀 기울이고 바른 대답을 해주는 것. 마음을 통하는 길.

△양정현:가족에게 비밀을 갖지 않는 것. 고민을 털어놓고 혼자 끙끙 앓지 않는 것. 대화를 하지 않으면 친구도 사귈 수 없다.

△양승창:진실과 거짓을 느끼는 또 다른 통로. 대화를 통해 얻어지는 것은 어떠한 것보다 귀한 마음.

10. 열 번째 가치-가족

△태문희:희로애락을 함께하고 진실한 마음을 나누는 것이 가족.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랑의 연결.

△배은하: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가장 아끼는 사람들.

△양아림:없으면 눈물이 나고 있으면 행복한 것(전에 고모부가 돌아가셨을 때 가족 모두 눈물 흘리던 생각이 나서…).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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