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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3월 3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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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식을 전하는 일부 보도의 행간(行間)에는 ‘이런 나라가 무슨 선진국이냐’는 조롱이 담겨 있다. “청년층 실업률이 20%가 넘고, 학생들이 거리에 나가 전국을 혼란의 소용돌이로 만드는 나라네”라며 프랑스를 낮추보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지난해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고통을 겪은 미국 역시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
잘못된 바람이다. 각 나라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최악의 경우를 끄집어내 그 나라를 삼류 국가로 매도하는 건 지나친 단순화다.
프랑스처럼 실업률이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는 나라도 드물다. 1990년대엔 선거 때마다 실업률 10%와 실업자 수 300만 명이 큰 쟁점이 됐다. 10%와 300만 명 돌파 여부가 차기 정권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 노릇을 했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 정부가 통계를 조작해 실업자가 300만 명을 넘지 않았다고 우긴 적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외국과의 계약이 성사되면 흔히 몇천, 몇만 시간 분량의 일자리가 확보됐다는 표현을 쓴다. 그만큼 많은 국민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게 됐다고 정부가 호소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도 청년층의 취업을 늘리기 위한 정부의 선의(善意)에서 시작됐다.
학생들의 분노를 말하지만 학생들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배려는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대학은 학비를 받지 않는다. 10여 년 전 파리2대학에 1년 연수를 위해 등록할 때 학생회비 2000프랑(당시 환율로 약 30만 원)만 내면 된다는 교직원의 말에 “정말이냐”며 반문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발급받은 학생증 덕분에 강의를 들은 것은 물론 보험료가 저렴한 의료보험과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는 등 갖가지 학생의 특혜를 누렸다.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학생들의 집세까지 지원해 준다.
이미 세계 최상위권인 국가 수준을 더 높이기 위한 선진국의 몸부림을 ‘하류들의 싸움’으로 치부하는 건 무지의 소치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우습다고? 작년 8월 미국을 강타한 카트리나 같은 재앙이 닥치면 우리나라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나 해 봤는가.
선진국의 고통을 타산지석으로 삼는다면 환영할 일이지만 그들을 조롱하기엔 우리의 수준이 부끄럽다.
사망 사고에 대한 사죄라며 안전대책도 세우지 않고 덜컥 공짜 관람을 기획하는 바람에 7만여 명이 몰려 난장판이 되고 수십 명이 다친 ‘롯데월드 사고’, 공연장에 먼저 들어가기 위해 수천 명이 우르르 몰려가다 어린이와 노인 등 11명이 인파에 깔려 숨진 ‘상주 압사 사고’가 어느 나라에서 발생했는가.
여성 총리 지명을 두고 집권당에서는 ‘역사적인 일’이라고 떠들고 있지만 세계적 차원에서 보면 별것 아니다. 영국에서는 1979년에 첫 여성 총리가 집권했다. 대통령과 총리가 사실상 권력을 분점하는 프랑스에서도 1991년 첫 여성 총리가 등장했다. 한국의 첫 여성 총리는 선진국에 비하면 한참 늦은, 그것도 차원이 다른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남의 눈의 티끌을 탓하기 전에 내 눈의 들보를 직시하는 겸손이 아쉽다. 프랑스의 세계적 석학 자크 아탈리가 왜 “지금의 사태는 훗날 사소한 문제로 기억될 것이다”는 말을 했겠는가.
방형남 편집국 부국장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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