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esign/지금 영국에선]국가서 ‘창조적 산업’ 집중 육성

  • 입력 2006년 2월 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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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디자인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영국의 ‘디자인 카운슬’이 펼치는 ‘범죄를 막는 디자인(Design against crime)’ 캠페인. 디자인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를 보여 준다. 디자인 카운슬과 센트럴 세인트 마틴대가 산학 협력으로 진행하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옷과 가방을 디자인한다. 사진 제공 디자인 카운슬
공공 디자인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영국의 ‘디자인 카운슬’이 펼치는 ‘범죄를 막는 디자인(Design against crime)’ 캠페인. 디자인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를 보여 준다. 디자인 카운슬과 센트럴 세인트 마틴대가 산학 협력으로 진행하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옷과 가방을 디자인한다. 사진 제공 디자인 카운슬
지난달 영국의 디자인 스쿨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대에서 만난 조너선 바렛 학장은 이 학교 1학년 학생들의 작품을 펼쳐 보였다. 그 작품들을 통해 영국 디자인 교육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었다.

‘1파운드(약 1800원)로 생활용품 만들기’란 주제로 만든 학생들의 창작물은 소박하면서도 유쾌 발랄했다.

한 학생은 담뱃갑 겉면에 ‘지겨움은 당신과 주위 사람들을 심각하게 해친다’는 스티커를 붙였다. 영국 담배의 흡연 경고문에 사용되는 ‘흡연’이란 단어를 ‘지겨움’으로 대체한 것이다.

다른 학생은 붉은색 벽돌을 우유 포장처럼 종이로 싼 뒤 벽돌의 다양한 쓰임새를 종이에 만화로 그려 넣었다. 벽돌은 뜨거운 냄비의 받침대로, 작은 씨앗을 심는 화분으로 사용될 수 있다.

바렛 학장은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져 디자인의 기본과 사회와의 관계를 가르친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에서 디자인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거듭 말했다. 그의 말처럼 영국은 일찍부터 국가 주도형 정책을 통해 세계 디자인 종주국이자 최대 디자인 수출국으로 자리 잡고 있다. 토니 블레어 총리도 “영국이 선도적인 창조 혁명, 즉 세계의 디자인 워크숍임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고 공언할 정도다.

영국은 일찍부터 디자인을 제2의 산업혁명으로 여기며 미래 창조 산업으로 개척해 왔다. 그 결과 영국은 프랑스처럼 미학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지 않고도, 이탈리아처럼 스타일을 주도하지 않고도 ‘세계 디자인의 로마’로 불리고 있다. 애플의 ‘아이팟’을 디자인한 조너선 아이브, 홍콩 첵랍콕 공항을 설계한 로만 포스터, 독특한 디자인 의자로 유명한 론 아라드 등이 이 나라 출신이다.

○ 영국을 이끄는 ‘제2의 산업혁명’

영국항공의 플랫 베드. 탠저린사의 작품으로 16개월 만에 영국항공의 시장 점유율을 27%나 끌어올렸다. 사진 제공 탠저린

영국의 디자인 경쟁력은 미래를 내다보는 정부의 전략, 체계적이고 자율적인 디자인 교육, 전통과 첨단이 공존하는 문화적 유연성이 어우러진 산물이다. 특히 국가 주도의 디자인 정책은 자국의 오랜 문화적 전통에서 디자인이라는 노다지를 캐는 데 중추 역할을 했다.

영국은 1945년 ‘굿 디자인 운동’을 전개했으며 1970년대 정부 산하에 ‘디자인 카운슬(The Design Council)’이란 기구를 설치해 디자인 육성 전략을 펼쳐 왔다. 1980년대 보수당 정권에서 디자인은 곧 혁신으로 통했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디자인하지 않으면 사임하라(Design or resign)”고 한 말은 디자인의 혁신성을 입증해 준다.

영국은 디자인을 창조적 산업의 원천으로 육성해 왔다. ‘크리에이티브(창조적) 브리튼’이라는 국가 주도의 디자인 홍보 캠페인이 대표적인 사례다. 1997년 집권한 노동당도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충만한 국가’의 이미지를 강조하며 창조적 산업에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역량을 집중하는 분야도 바로 ‘창조적 산업’이다.

‘2004∼2005 영국 디자인산업 현황’(디자인 카운슬 자료)에 따르면 영국에는 18만5400명의 디자이너가 연간 23조3000억 원 규모의 디자인 산업을 이끌고 있다. 이는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1%에 이른다. 디자인 컨설팅으로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돈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영국은 디자인 과목을 16세까지 받는 정규 교육 과정에 포함시키고 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대와 왕립예술학교(RCA) 등 영국의 디자인 전문 스쿨들은 매년 유럽 디자이너의 30%를 배출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젊은 디자이너들의 해외 전시를 지원하는 영국문화원의 에밀리 캠벨 디자인 부장은 “새 천년 이후 디자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급격히 증가했다”며 “디자인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 전통과 첨단을 잇는 혁신

영국의 디자인 파워는 또 오랜 전통과 역사에서 미래의 비전을 창출하려는 영국인들의 철학에서 비롯된다. 전통과 문화를 새롭게 해석해 21세기 창조적 산업의 금맥을 찾으려는 작업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옛 화력발전소 건물의 골격을 그대로 둔 채 현대적 분위기로 리모델링에 성공한 테이트 모던 미술관, 허름한 창고를 개조해 개성 있는 갤러리들을 모이게 한 서더크 지역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곳은 과거와 단절되지 않은 영국 디자인의 정신을 엿보게 한다. 또 ‘콘란 숍’ ‘스미스슨’ 등 인테리어 소품점과 문구 매장에는 세련된 감각을 선보이는 제품들이 줄을 잇고 있다.

영국에서 디자인은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국가 주도형 전략을 펼치더라도 건물이나 장비 등 하드웨어가 아니라 교육을 통한 저변 확대에 초점을 맞춘 결과다. 창조적 산업의 소프트웨어 확충에 전략의 초점을 맞췄던 것이다.

최근 영국 스타일 잡지 ‘i-D’는 ‘휴식하다(rest)’ ‘이야기하다(talk)’ ‘움직이다(move)’ 등 일상의 행위를 2005년 디자인을 이끈 콘셉트로 정의했다. 영국에서 디자인이 얼마나 일상으로 침윤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디자인 카운슬의 데이비드 케스터 대표의 말은 ‘디자인 코리아’를 외치는 한국 사회에 커다란 시사점을 던진다.

“디자인은 단순히 제품의 스타일이 아니라 사고(思考)의 스타일이다. 그것은 결국 우리의 미래를 디자인한다.”

런던=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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