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제6대 메세나협의회장 맡은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입력 2005-12-17 03:01수정 2009-10-0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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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주 회장은 기업과 문화예술단체의 짝짓기는 모두를 이롭게 하는 ‘윈윈 활동’이라고 강조한다. 환히 웃는 그의 모습에서 메세나의 밝은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 신원건 기자
《남저음 목청. 낮게 깔리는 굵직한 목소리다. ‘이건산업 박영주(朴英珠·64) 회장’이라는 신분을 몰랐다면 성악 하는 사람이라 해도 믿고 넘어갈 뻔했다.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있는 이건산업 회장실에서 만난 그에게 “바리톤을 했으면 어울렸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옛 생각이 나는 듯 “아닌 게 아니라 고등학교 재학시절 음악 선생님이 성악을 전공하라고 권유해서 사실 고민을 좀 했었지요”라고 답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피아노를 쳤다고 한다. 일찍부터 음악과 미술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는 게 그가 오늘 ‘문화 최고경영자(CEO)’로 불리게 된 계기였을 터.》

박 회장은 올해 10월 한국메세나협의회 6대 회장에 선임됐다. 하지만 중견기업 오너인 그가 문화활동에 적극 나선 것은 꽤 오래전이다.

그는 기업의 문화활동이 미미했던 16년 전부터 ‘이건음악회’를 이끌어 오고 있다. 목재 전문기업인 이건산업의 이름을 사용해 5, 6개 도시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클래식 중심의 음악회를 열고 있는 것. 요즘은 판화수집에 심취해 있다. 각국의 판화를 수집해 판화 전문미술관을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단다. 음악은 ‘클래식 마니아’이지만 재즈와 창도 좋아한다. 이처럼 평소 꾸준한 문화예술 지원활동을 해온 전력(前歷)이 그를 메세나협의회장으로 인도한 셈이다.

그는 “문화예술지원 활동을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기업들이 꽤 많은 게 현실”이라며 “메세나 활동은 이런 기업과 문화예술을 짝짓기해 주는 중매쟁이 역할”이라고 정의했다.

메세나협의회가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은 350∼400여 개에 이르는 예술단체와 기업을 연결시켜 주는 일이다. 말하자면 ‘일사일예(一社一藝)’를 지향한다는 뜻이다. 최근 현대백화점이 서울팝스오케스트라와 짝 지은 데 이어, 한 보청기 회사가 아카펠라(무반주 합창) 단체를 지원키로 한 것은 메세나 운동이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현재 추진 중인 것을 감안하면 내년에 20∼30개의 기업과 예술단체들이 손을 잡을 것으로 보입니다. 메세나 운동은 문화예술 활동이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연말과 연초에 더욱 절실히 요구되지요.”

그는 문화활동을 통한 ‘사회의 업그레이드’를 강조한다.

“기업이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사회가 한 차원 높게 성숙된다면 기업들이 그 혜택을 고스란히 받게 됩니다. 기업의 메세나 활동은 바로 기업을 위한 길이기도 하지요.”

그는 이 때문에 중견 및 중소기업들도 문화예술 활동은 재력이 풍부한 대기업만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메세나 운동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문화예술 지원활동은 여유 있는 기업들만이 부릴 수 있는 사치가 아니라는 것.

“메세나 활동이 왕성한 영국 프랑스 미국 등과는 아직 격차가 있지만, 문화사업에 열심인 한국 기업들도 칭찬을 받아야 할 점이 적지 않습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들이 기업활동을 인정해 주고 마음으로부터 응원을 보내주는 것입니다.”

정부도 기업의 예술활동 지원에 제도적으로 뒷받침을 해 주면 좋겠다는 ‘민원’도 빼놓지 않았다.

사실 그는 한국보다 남태평양에서 더 알려진 사람이다. 1989년부터 솔로몬 군도에 진출해 현재 여의도 90배 면적의 땅에 세계적인 열대조림지를 조성하고 있다. 한국기업이 이처럼 해외에 넓은 땅을 확보해 운영하는 것은 드문 일. 또 솔로몬 군도에 ‘이건재단’을 설립해 국립미술관 건립과 장학 및 의료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재단을 통해 연간 60∼100여 명의 현지 젊은이들에게 장학사업을 펼치고 있다. 원주민에게 농업 및 임업 지도를 하는 것이 이건재단 및 이건산업의 기본업무가 됐다.

일본 건설업체가 사기로 한 솔로몬 군도의 옛 영국 총독관저를 ‘국립미술관’으로 활용하기 위해 현지 정부에 진언해 계약을 취소시키고 결국 국립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일은 지금 생각해도 뿌듯하단다.

현지에서 신망을 쌓은 덕택에 솔로몬 군도에서의 그의 입지는 꽤 탄탄하다.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솔로몬 군도의 표를 얻어야 할 때는 ‘박 회장을 움직여라’는 말이 외교가에 나돌 정도. 박 회장은 “해외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꾀’가 아니라 ‘덕(德)’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동원 기자 daviskim@donga.com

:메세나(Mecenat)란?:

문화예술과 스포츠 등에 대한 원조 및 공익사업 등을 돕는 기업들의 지원 활동을 총칭하는 프랑스어. 문화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은 로마의 정치가 마에케나스(Maecenas)에서 유래됐다. 1967년 미국에서 기업예술후원회가 발족하면서 이 말을 처음 썼다.

○박영주 회장은

△1941년 부산 출생

△1959년 경기고, 1963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78년 이건산업 대표

△1990년 한국합판공업협회장

△1993년 솔로몬아일랜드 명예영사

△1998년 예술의 전당 후원회 부회장

△2001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2005년 한국메세나협의회장(6대)

▼역대 메세나협의회장▼

한국메세나협의회가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란 이름으로 창립(1994년)된 후 지금까지 5명의 재계 인사가 협의회를 이끌었다.

창설 초기 메세나 활동에 열성을 쏟은 인사는 최원석(崔元碩) 당시 동아건설 회장이었다. 역대 최장수 회장이기도 한 그는 첼리스트 장한나 씨에게 세계적인 첼로 명기(名器) 과다니니를 기증하는 등 문화예술인 지원에 적극적이었다.

최 전 회장의 뒤를 이어 취임한 윤병철(尹炳哲) 전 하나은행장은 발레 공연에 직접 출연하는 등 문화적 풍모를 잃지 않았던 인사. 재임 중 ‘문화예술지원 기업대상’을 제정하는 데 앞장섰다.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외환위기 시절에도 문화예술 지원 활동에 나서 주목을 끌었다.

4대 손길승(孫吉丞) 전 SK그룹 회장은 “한 기업이 하나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해 주자”는 취지의 ‘1기업 1문화’ 운동을 시작했다. ‘문화예술지원 기업대상’을 ‘메세나 대상’으로 바꾼 그는 이를 대통령상으로 승격시키는 데 앞장섰다.

5대 회장을 이어받은 고 박성용(朴晟容) 금호문화재단 이사장은 단체의 이름을 지금의 한국메세나협의회로 바꾸고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 인물.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은 곧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라고 개념 규정했다. 그는 ‘찾아가는 메세나’ 활동의 필요성을 역설해 문화 소외지역에 문화예술의 향기를 전한 회장으로도 꼽힌다. 어린이에게 문화예술 교육을 시켜 어려서부터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어린이를 위한 예술(Arts for Children) 활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김동원 기자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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