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김원겸]사람들 떠난 포구 채우는 갈대

입력 2005-12-05 03:00수정 2009-10-0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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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랗고 깊게 내륙으로 들어오는 만, 그 바다를 가로막은 둑이 있다. 그 너머는 뭍이 된 갯벌, 드넓은 갈대밭이다. 그 가장자리 집들이 보이는 곳은 포구라는 이름만 남아 있는 면 소재지(전북 부안군 줄포면)다. 일제강점기에 쌀을 수탈해 가기 위해 바다를 막고 갈대 무성한 갯벌을 메워 조성한 항구였다. 침략자들은 큰 정미공장을 세우고 경찰서를 들어앉혔다. 일본인들과 천석꾼, 만석꾼들의 저택이 지어졌다.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곡창과 바다를 아우르는 물산의 집산지가 됐다.

포구는 6·25전쟁 이후 쇠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던 듯싶다. 시나브로 쌓이는 개흙 때문에 배가 드나드는 갯벌 사이의 물길이 좁아지는 까닭이었을까. 나는 그 무렵 거기서 태어났다. 바다 돛배와 공판장에 쌓이는 해산물, 잘 익은 냄새를 풍기며 부려지던 섬에서 온 젓갈들이 내 유년기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선창가 술집들이며 거친 뱃사람들도.

그리고 갈대. 면사무소 옆 바다로 통하는 유수지에도, 소나무 야산을 끼고 이어지는 바닷가에도 갈대들이 군데군데 우거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갈대포구’라는 뜻의 지명의 유래를 짐작하게 할 만큼 사람들 눈길을 끌 만한 규모는 못 되었다. 포구의 주인은 엄연히 사람들이었다. 장날 장터는 물론 밀물 든 선창가와 보통 날에도 사거리에 북적거리던.

갈대가 터전을 회복하기 시작한 건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였다. 내가 군에서 제대했을 무렵 사람들은 너도나도 포구를 떠나 빈집이 흔하게 생겨났다. 명절에 고향 내려갈 때마다 포구의 모습은 변해 갔다. 풍화작용 속에 내던져진 살림집들과 선창가 건물, 부두의 석축도 무너져 돌들이 몇 척의 폐선과 함께 개흙에 묻히고 있었다. 포구의 흔적이 빠르게 지워졌다. 그 자리에 갈대가 자라났다. 쓰레기로 메워지는 부두 주변과 야산을 따라 이어지는 바닷가도 갈대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갈대들이 그렇게 포구를 포위해 오는 동안 남은 사람들은 자기네끼리 버거운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두 패로 나뉘어 ‘작은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 들어서는 걸 반대한다고 대문 위에 해골 그려진 노란 깃발을 펄럭였던 집들과 그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집들이 지금도 여전히 원수처럼 등을 돌리고 있다. 올여름에는 엄청난 집중폭우가 쏟아져 면 소재지 전체가 침수되기도 했다. 그렇잖아도 우중충하기만 한 거리가 폭격 맞은 꼬락서니가 되었다.

그 물은 갈대들만 더 기운차게 자라도록 했을 것이다. 바닷가 한쪽, 군 전체에서 실려 오는 쓰레기들로 매립되어 생기는 땅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군침을 삼키고 있을 것이다. 그러는 저들을 보기 위해 주말이면 관광객 차들이 꼬리를 물고 오는 건가. 저 갈대 숲 안에서 인기 TV 드라마를 찍기도 했단다.

갈대들은 사람들이 떠난 자리는 물론 새로 생기는 땅까지 야금야금 차지하며 명실상부하게 자신들의 영토를 회복하는 중일까. 일본인들이 오기 전 고즈넉했을 그 풍경을 만들어 가고 있는 걸까.

김원겸 동요작사가·서울시지하철공사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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