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정은]국회 몸싸움 물리친 ‘농사꾼 아들’의 설득

입력 2005-11-25 03:05수정 2009-10-0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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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2시 반 쌀 협상 비준동의안이 막 상정된 국회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비준안 처리에 반대하는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발언대가 있는 단상을 점거하는 과정에서 이를 저지하는 여당 의원들과 몸싸움이 벌어졌기 때문. 단식 28일째인 강기갑(姜基甲) 의원이 울부짖으며 주저앉는 것을 본 민노당 의원들의 항의는 더 거칠어졌다.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이 “반대토론 기회를 주겠다”고 했지만 이들은 막무가내였다. 현애자(玄愛子) 단병호(段炳浩) 의원은 아예 단상 발언대를 몸으로 끌어안고 다른 의원들의 토론을 막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토론이 있고, 논리가 있느냐”며 발언대 마이크도 내주지 않았다.

김 의장이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노력해 온 분들이 왜 이러느냐” “법을 만드는 분들이 국회법부터 지켜라”고 질책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때였다. 열린우리당 조일현(曺馹鉉·강원 홍천-횡성) 의원이 앞으로 나갔다.

조 의원은 마이크도 없이 맨 목소리로 “저 자신 맨발로 사는 닭발보다 더 험하게 사는 농사꾼의 자식”이라며 입을 열었다. 그는 14대 국회의원 시절 농촌지역 의원으로서 쌀 시장 개방에 반대했던 일, 5월 쌀 협상 이면합의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 위원장을 맡아 문제점을 지적했던 일 등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조 의원은 이어 “현 상황에서 많은 것을 따져 보니 비준안 처리가 진정 농민을 위한 길”이라고 민노당 의원들을 설득했다. 또 “죽을힘으로 삽시다”라며 농민을 위한 길을 함께 찾아보자고 강조했다.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민노당 의원들도 묵묵히 조 의원의 말을 경청했다. 조 의원에게 설득 당하는 분위기 속에서 민노당의 물리력 행사는 결국 40분을 버티지 못했다. 비준안은 이날 오후 3시 13분 통과됐다.

조 의원은 24일 “지역구 농민들의 반발로 다음 총선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들을 위한 깊은 고민 끝에 한 행동이었다”며 “오히려 발언 이후 많은 농민이 격려해줬다”고 말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긴다면서도 이날 몸싸움으로 일관한 민노당의 대응은 조 의원의 차분한 설득과 대조를 이뤘다.

이정은 정치부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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