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폴 크루그먼]‘떠나야 할 때’ 모르는 이라크 美軍

  • 입력 2005년 11월 2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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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쟁은 잘못 시작된 것이라는 2003년 이래의 이런저런 주장들에 대해 현자들이 “그만두라”고 조언한 것이 얼마 전의 일이다. 2004년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야말로 우리가 결코 미국인들을 설득하지 못할 것임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자들은 어떻게 참전하게 됐는지에 대한 논쟁은 그만두고 다음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초점을 맞추자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자들이 틀렸다. 이제 미국인 대다수는 전쟁에 휘말려 들었다고 확신하고 있지 않은가.

존 머사 미 하원의원이 최근 이라크 주둔 미군이 신속히 철수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그를 두둔하는 이들은 미군이 임무를 완성하고 있다는 두루뭉술한 일반론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머사 의원은 사상자가 늘고 모병은 지체되고 있으며, 반란군의 공격이 잦아지고 석유 생산은 정체 상태에 있을 뿐 아니라 깨끗한 물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머사 의원은 미군의 이라크 주둔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전쟁은 군대를 파괴하고 있으며 가능한 한 빨리 철군해야 한다는 요구다.

나는 여기에다 전쟁이 미국의 도덕적 권위도 무너뜨리고 있다고 덧붙이고 싶다. 부시 대통령이 인권을 언급할 때 세계는 바그다드의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를 떠올렸다. 부시 행정부의 관료가 자유의 확산에 대해 말할 때 세계는 신권(神權) 정치가와 그의 민병대가 다스리는 이라크의 현실을 상기한다.

일부 정부 고관은 머사 의원이 미군을 폄훼하고 적에게 안도감을 줬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런 비난은 이제 먹혀들지 않는다. 부시 행정부는 대중의 신뢰를 잃었다.

이라크 관련 정책을 옹호하는 이들은 ‘우리가 지금 이라크에서 철수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떠난 뒤 내전이 발발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궁금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라크 철군의 최적기는 정확하게 언제인가.”

우리가 승리를 거둘 때까지 이라크에 주둔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기껏해야 미군이 더는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머물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더 높은 세금을 물리거나 더 많은 군대를 모으는 것 같은 희생을 결코 미국에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돈과 시간을 빌려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시간은 다 돼 간다. 이라크의 몇몇 군부대는 병사들의 질(質)과 사기가 떨어져 가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수한 다음에 상황이 얼마나 흉악해질지는 궁금하지 않다.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그보다도 앞으로 1년이나 2년 더 이라크전쟁을 끌고 가는 것이 이치에 맞는지가 의문스럽다.

비관론자들은 철군하면 이라크가 혼란에 빠진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될 거라면, 우리는 서둘러 철군하는 것이 낫다. 미국 시사평론지 ‘애틀랜틱 먼슬리’ 최신호에서 제임스 팰로스 씨는 해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썼다. “이라크에서 미군은 패배하고 군대를 망치거나 단순히 패배할 수 있다.”

미군 철수가 상황을 사실상 개선할 수도 있다. 머사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이라크인들의 반란은 외국인 점령자들에게 저항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미군이 떠난 뒤에 그들은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 같은 광신적인 이방인들에게로 시선을 돌릴 것이다.

이라크에 머무는 것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방법은 미군을 끝까지 끌고 가는 것이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에 대비한 ‘시간 벌기’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나는 설득력 있는 사례를 내놓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떠날 때’라고 지적한 머사 의원이 옳다.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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