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94>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10월 2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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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한왕 유방은 막상 패왕과 마주치기만 하면 흠씬 두들겨 맞은 개처럼 꼬리를 사리고 도망쳤지만 돌아서면 그뿐이었다. 며칠 되지 않아 또 어디선가에서 군사를 모아 멀리서 으르렁거리거나 어느새 다가와 발뒤꿈치를 물려고 덤벼들었다. 그러다 보니 전선이 이리저리로 오락가락해 그를 상대하는 패왕으로서는 그만큼 전선이 넓어진 꼴이 되었다.

거기다가 한신에게 군사를 주어 조나라를 치러 보낸 뒤로 한왕은 다른 세력을 끌어들여 패왕과 맞서는 새로운 전선을 만들어 내는 데 맛을 들였다. 경포를 꾀어 구강(九江)에 전단(戰端)을 여는가 하더니, 다시 팽월을 꼬드겨 양(梁) 땅을 어지럽혔다. 관영과 조참을 떼내 한신 밑에서 따로 움직이게 하고, 다시 노관과 유고(劉賈)를 양 땅으로 보내 팽월을 돕게 하였다. 제나라에도 사람을 보내 그 왕을 어르고 달래는 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하기야 패왕도 때로 사람을 보내 딴 전선을 열고 맞서게 했지만, 그 성격은 유방이 형성한 전선과 아주 달랐다. 기껏해야 종리매나 용저처럼 오래된 심복(心腹)에게 자신이 거느리던 군사를 떼어주어 보냈고, 그들이 맡은 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작전범위가 정해진 한 전투거나, 아니면 패왕이 그곳에 이를 때까지 현상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따라서 한왕이 펼쳐둔 여러 전선을 번갈아 뛰어다니며 싸우는 것은 실상 패왕 혼자인 셈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나라인 서초(西楚)와 그 도읍 팽성에 패왕이 편히 머물 수 있는 날은 하루도 없고, 심지어는 한 전선에도 한 달 넘게 머물기 어려웠다. 또 지그시 참고 기다리는 것은 패왕이 좋아하는 병략(兵略)이 못돼 전선에서도 한가한 날은 별로 없었다. 싸움이 없는 날보다는 피투성이 전투를 벌이는 날이 더 많아, 우 미인을 찾아보러 군막을 떠날 수 있는 밤이 드물 수밖에 없었다.

멸문(滅門)의 참화를 겪고 어렵게 살아남은 이들 가운데는 때가 와도 처자를 두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있는데, 숙부 항량과 마찬가지로 패왕도 그랬다. 쫓기던 어린 날의 참혹한 기억 때문일 테지만, 패왕은 그때 이미 나이 스물아홉이고 세력은 천하를 호령하면서도 왕비를 맞아 후사(後嗣)를 두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둘 사이에 정궁(正宮)이 가로막지 않은 것 또한 우 미인과 패왕 사이를 여느 군왕과 후궁(後宮) 사이보다 각별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 밖에 전쟁이란 생존양식의 격렬함과 그 승패가 연출하는 비장미에 홀려 있는 젊은 무장의 순직함도 우 미인과의 사랑을 뒷사람의 입에까지 오르내리게 만드는 데 한 몫을 했다. 패왕은 싸움 이외에는 모든 것에 단순하고 소박하였다. 먹고 마시는 것에 그러했고, 걸치는 옷과 머무는 집에 그러했듯, 여자를 사랑함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아마도 우 미인은 싸움터를 떠돌면서 젊은 날을 보내던 패왕이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사랑한 여자였다.

그런 우 미인이 밉살맞은 적의 손에 떨어질 위기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다시 패왕을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그 밤이 조용하겠는가. 몇 차례 술잔을 비우며 띄엄띄엄 어눌한 정담(情談)을 주고받던 패왕이 갑자기 우 미인을 삼키듯 껴안았다 풀어 주며 나직하게 말하였다.

“불을 끄고 침실로 들라. 오늘밤은 그대와 산이 뽑히고 땅이 뒤집힐 전투를 치르리라.”

그리고 함께 불같은 하룻밤을 보낸 뒤 믿고 부리는 집극랑(執戟郞) 하나를 불러 말했다.

“우 미인에게 맞는 갑주를 한 벌 구해 주고, 시양졸(시養卒)들의 군막 한 채를 내주어라. 앞으로는 과인의 중군과 함께 움직이게 될 것이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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