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국정원 개편 논의를 지켜보면 ‘본말이 전도됐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불법 감청이 비밀도청팀이나 과학보안국의 존재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기보다는, 최고 권력자와 집권층이 정보기관을 사유화해 정치공작에 이용한 구태의연한 관행 탓이라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역대 정보기관 수뇌부의 무소신과 정권 눈치 보기가 권력의 시녀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 주원인이란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정보기관 개혁의 초점은 기구 뜯어고치기나 권한 빼앗기가 아니라 ‘정치적 독립성’ 보장과 ‘역할 바로 세우기’라고 하겠다.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려면, 현행대로 국정원을 대통령 소속하에 두되 국가정보원법 제2조를 개정해 대통령의 지시 감독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 그 대신 국가인권위원회처럼 ‘독립적인 업무 수행’을 명시하는 게 바람직하다. 국정원장의 임기제 도입과 함께 임명 시 국회 동의를 얻도록 하고 탄핵소추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정보맨의 중용과 정치관여죄 적용도 실질화해야 한다.
현 단계에서 조직 개편은 ‘최소주의’를 택하는 것이 타당하다. 일부에선 국정원의 대내 정보활동 업무를 떼어내 다른 기구에 넘겨주자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테러, 외사방첩, 산업보안, 국제범죄 추적 등을 국경을 기준으로 해서 인위적으로 쪼갤 수는 없다. 이는 9·11테러 이후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들이 대내 및 해외정보 활동의 유기적인 통합을 모색하는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국정원의 기구를 요소별로 해외, 국내, 대북 부서로 나누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다. 이 점에 비춰 기능 내지 임무를 중심으로 현행 조직을 분석처(정보처), 운용처, 과학처, 지원처 등으로 재편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국정원의 탈권력화 차원에서 국가 정보 보안 업무의 기획 조정 기능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로 이관하고 대공 수사권을 폐지하자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NSC나 그 사무처는 인력의 제한과 전문성 결여로 국정원, 관세청,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 다양한 정보수집기관의 업무를 조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공 수사는 첨단 과학수사장비, 정예화된 수사요원, 국내외를 연결한 첩보망이 요구되는 전문 수사영역이다. 장기간에 걸친 추적을 통해 조직·배후의 전모를 밝히려면 보안 유지가 필수적이다. 간첩의 ‘확신범’적 성격, 조사과정에서 피의자의 묵비권 행사 등 신문(訊問) 투쟁, 정식 수사단계에서는 사실관계 확인밖에 하기 어려운 시간상의 제약도 무시해선 안 된다. 결국 대공수사를 전담하는 기관은 반드시 필요하며, 더욱이 수사권 없는 정보활동만으론 간첩 검거는 기대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국정원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고 예산 사용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X파일의 유출 배경을 감안할 때 국정원 직원의 계급정년 연장 등 신분 보장을 강화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듯, 불법 감청 행위를 이유로 너도나도 국정원 죽이기에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 국민과 정치권은 국력이 정보에 의해 결정된다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하고, 정보기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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