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4년 美포드 대통령 닉슨 사면

  • 입력 2005년 9월 8일 03시 03분


미국 제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 솔직하고 겸손한 인품으로 ‘아주 괜찮은 사람(a nice guy)’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워낙에 실수 연발인 그를 대통령감으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예일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변호사로 일하다 미시간 주에서 공화당 하원의원으로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원내총무까지 됐지만 그의 꿈은 하원 의장이 되는 게 최종 목표였다.

“포드가 이 의자에 앉는 장면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그를 부통령으로 발탁한 리처드 닉슨은 대통령 재임 시절 집무실에서 측근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닉슨의 농담이 현실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이 탈세 혐의로 물러나 여론이 악화되자 당시 의회를 장악하고 있던 민주당까지 포드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보내 부통령직을 맡게 됐다.

얼마 안 있어 이번엔 닉슨이 구렁텅이로 떨어졌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정치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진 것. 결국 닉슨은 중도 사임했고 포드는 선거조차 치르지 않은 채 ‘우연한 대통령(accidental president)’에 올랐다.

“저는 정직이 항상 최선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정책을 시행해 나가는 데 공개적이고 허심탄회한 저의 본성이 바탕이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국민 여러분, 이 나라의 기나긴 악몽은 이제 끝이 났습니다.”

취임 초 포드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취임사는 아직도 명연설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사람 좋은 포드는 취임한 지 한 달도 채 안 돼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만다.

1974년 9월 8일. 포드는 “미국이 어두운 얘기는 이제 묻어 버리고 전진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닉슨을 사면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닉슨은 8개월여에 걸친 하원 법사위의 탄핵 청문회를 통해 범법 사실이 인정된 상태였다. 여론도 미국인의 62%가 사면에 반대하고 있었다.

포드의 지지도는 급전직하했고 재임 기간 내내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신문의 가십 면을 독차지했던 그는 결국 닉슨에 비해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무능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훗날 포드는 닉슨의 비서실장이었던 알렉산더 헤이그가 물밑 거래를 제안한 건 사실이지만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며 자신의 양심은 깨끗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대통령의 특권이라 해도 여론을 외면한 채 사면권을 남발한 책임은 오로지 그의 몫으로 남았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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